“제발 나를 버려줘…” 10년 차 완벽한 아내가 가출하며 남긴 쪽지 한 장, 그리고 충격적인 일기장 ( “Xin hãy vứt bỏ em…” Mảnh giấy người vợ hoàn hảo để lại khi bỏ nhà đi sau 10 năm, và cuốn nhật ký gây sốc)

🟢 Hồi 1 – Phần 1: Chiếc Lồng Kính

(Chủ đề: Sự hoàn hảo đến ngạt thở và sự vô hình của người vợ)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유진의 눈이 먼저 떠졌다. 커텐 틈으로 스며드는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남편 민준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고른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유진은 잠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마치 그 숨소리가 그녀가 오늘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냈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몸짓은 훈련된 고양이처럼 가볍고 조심스러웠다.

거실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발바닥에 닿았다. 어제 밤, 아이들이 잠든 후에 완벽하게 정리해 둔 거실은 잡지 화보처럼 정갈했다. 쿠션의 각도,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컨의 위치, 바닥에 먼지 한 톨 없는 마루까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유진만이 그 정적 속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그녀는 부엌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는 것이었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김유진이 아닌, ‘민준의 아내’이자 ‘지우와 시우의 엄마’로서의 하루가.

그녀는 쌀을 씻기 시작했다. 쌀 씻는 소리가 고요한 부엌을 채웠다. 촤르륵, 촤르륵. 물을 버리고 다시 받고, 손을 넣어 쌀알을 문지르는 그 단순한 행위가 그녀에게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나면, 그녀는 냉장고를 열었다. 오늘은 민준이 좋아하는 북어국을 끓일 생각이었다. 어제 술을 마시고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요즘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눈치였으니까. 무를 썰고, 북어를 참기름에 볶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도마에 칼이 닿는 소리, 탁, 탁, 탁, 탁. 일정한 리듬. 그 소리는 평화로웠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건조했다.

국이 끓는 동안 유진은 다용도실로 가서 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민준은 주름 하나 없는 셔츠를 좋아했다. 칼주름이 잡힌 소매, 빳빳한 깃. 스팀 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유진의 얼굴을 잠시 가렸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셔츠의 깃을 잡으며 생각했다. 10년 전, 그녀는 붓을 들고 있었다. 캔버스 위에서 색을 섞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던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은 뜨거운 다리미의 열기를 견디며 남편의 셔츠 깃을 세우고 있었다. 씁쓸함이 밀려오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게 내 행복이야. 가족을 위한 헌신. 그게 사랑이니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속삭였다.

6시 30분. 안방 문이 열리고 민준이 걸어 나왔다. 부시시한 머리에 잠이 덜 깬 얼굴. 그는 식탁에 앉으며 하품을 했다. 유진은 막 끓여낸 북어국과 갓 지은 밥, 그리고 정갈하게 담은 반찬들을 식탁 위에 차려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아침상이었다. “일어났어요? 물 먼저 마실래요?” 유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민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받아들었다. “오늘 중요한 미팅 있다고 했죠? 넥타이는 네이비 색으로 준비했어요. 그게 당신한테 제일 잘 어울려서.” 민준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 그래. 고마워. 근데 국이 좀 싱겁지 않아?” 그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유진의 가슴 한구석이 쿡 찔린 듯 아려왔다. 그녀는 서둘러 소금을 가져와 국에 조금 더 넣었다. “미안해요. 입에 안 맞았구나.” “아니, 뭐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민준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밥을 계속 먹었다. 그의 시선은 유진에게 머물지 않았다. 유진은 식탁 맞은편에 앉아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젓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밥을 씹을 때마다, 그녀는 안도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당신 앞에 앉아 있는데. 당신은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밥을 차려준 기계를 보고 있는 걸까.

7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인 첫째 지우의 방문을 두드렸다. “지우야, 학교 가야지. 7시야.” 안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지우의 등짝을 가볍게 토닥였다. “얼른 일어나. 오늘 영어 듣기 평가 있다며.” “아, 알았다고요. 나간다고요.” 지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불을 발로 찼다. 사춘기였다. 예전에는 엄마 껌딱지였던 딸이 이제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시를 세웠다. 유진은 묵묵히 지우의 교복을 챙겨 침대 위에 올려두고 방을 나왔다. 그다음은 7살 막내 시우였다. 시우를 깨우는 일은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우리 시우, 유치원 가야지? 오늘 체육 시간 있는 날이잖아.” 시우는 눈도 못 뜬 채 유진의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 나 더 잘래. 유치원 안 가면 안 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아이의 체온. 유진은 시우를 꼭 안아주며 웃었다. 이 순간만큼은 진짜 행복하다고 느꼈다. “안 되지. 친구들이 시우 기다릴 텐데? 엄마가 맛있는 계란말이 해놨어. 얼른 씻고 먹자.” 그녀는 시우를 욕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키고, 양치를 도왔다. 아이의 얼굴에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는 손길은 분주했지만 섬세했다.

7시 40분. 식탁은 다시 한번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지우는 입맛이 없다며 밥을 깨작거렸고, 시우는 멸치를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민준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지우야, 한 숟가락만 더 먹어. 아침 안 먹으면 머리 안 돌아가.” “아, 진짜 배 안 고프다고. 엄마는 왜 자꾸 강요해?” 지우가 수저를 탁 내려놓았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유진의 귀를 때렸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가.” 민준이 넥타이를 매며 거실로 나왔다. 유진이 준비해 둔 네이비 색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었다. 유진은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그의 넥타이를 고쳐 매주었다. “당신 오늘 늦어?” “글쎄, 상황 봐서. 회식 잡힐 수도 있고.” 민준은 시계를 확인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다녀올게.” “네, 조심해서 다녀와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두를 신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퇴장이었다.

곧이어 지우도 가방을 메고 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시험 잘 봐.” 지우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대답 없이 나갔다. 마지막으로 시우가 유치원 버스를 타기 위해 현관 앞에 섰다. 유진은 시우의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어주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랑 싸우지 말고.” “응! 엄마 이따 봐!” 시우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달려 나갔다. 유진은 현관 문을 잡고 아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1층 현관을 나서서 노란색 유치원 버스에 타는 모습까지 창문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현관문을 닫았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 띠리릭. 그 소리와 함께 집안에는 다시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울리던 아이들의 목소리, 남편의 발소리, 달그락거리던 그릇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유진은 현관에 서서 잠시 멍하니 거실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벗어놓은 잠옷이 소파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식탁 위에는 아이들이 남긴 밥과 반찬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내렸다. 마치 가면이 벗겨지듯, 온화하고 다정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만이 남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응시했다.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그녀는 쉴 수 없었다. 지금 쉬면 이 난장판을 치울 수 없으니까.

유진은 식탁으로 다가갔다. 지우가 남긴 밥, 시우가 남긴 계란말이, 민준이 남긴 국물. 그녀는 그것들을 한데 모았다. 버리기엔 아까웠다. 그녀는 싱크대 앞에 서서, 가족들이 남긴 음식들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식어버린 밥알이 입안에서 까끌까끌하게 맴돌았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위장을 채우기 위해 씹고 삼킬 뿐이었다. 서서 밥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 싱크대 앞 작은 창문에 비쳤다. 부스스한 머리,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목이 늘어난 티셔츠. 창문에 비친 여자는 누구일까. 김유진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밥을 차려주고 남은 찌꺼기를 처리하는 관리인일까?

“맛있다…” 그녀는 억지로 중얼거렸다. 맛이 있어야만 했다. 내가 만든 음식이니까. 내 가족이 먹고 남긴 거니까. 하지만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녀는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싱크대 바닥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놀란 듯 그녀는 어깨를 움찔했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은데. 그녀는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걸까.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물을 틀었다. 솨아아아. 쏟아지는 물소리가 그녀의 귀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그릇들을 닦기 시작했다. 거친 수세미가 손바닥을 긁었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손을 붉게 얼려도 멈출 수 없었다. 접시 하나, 컵 하나, 숟가락 하나. 그녀는 그릇을 닦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검은 곰팡이를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괜찮아. 나는 행복해. 나는 완벽한 아내고 엄마야.’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반복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거실로 나왔다.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때, 거실 한구석에 놓인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전집류와 학습지들 사이, 구석진 곳에 꽂혀 있는 낡은 스케치북 하나. 결혼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들이 담긴 스케치북이었다. 유진은 홀린 듯 그쪽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스케치북을 꺼내려다 멈췄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저걸 열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저걸 여는 순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무언가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거두고 뒤를 돌았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본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망치듯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위잉- 하는 기계음이 집안을 울렸다. 소음이 필요했다. 자신의 생각 소리를 덮어버릴 만큼 큰 소음이. 그녀는 미친 듯이 청소기를 밀었다. 바닥에 보이지 않는 먼지까지 다 빨아들일 기세로. 거실을, 안방을, 아이들 방을 오가며 그녀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땀이 이마에 맺혔지만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10시였다. 집안은 눈이 부시게 깨끗했다. 햇살이 베란다 창을 통해 깊숙이 들어와 마룻바닥을 비췄다. 공기 중에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은은하게 떠다녔다. 완벽했다. 흠잡을 데 없는 ‘행복한 가정’의 모델 하우스 같았다. 유진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이 그녀를 짓눌렀다. 넓은 집 안에 혼자 남겨진 기분.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벽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띠링. 핸드폰 알림음이 정적을 깼다. 지역 맘카페 알람이었다. [제목: 우리 아이 영어 학원 레벨 테스트 결과 공유해요~^^] [제목: 남편이 이번 결혼기념일에 사준 가방 자랑 좀 할게요~] 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스크롤을 내렸다. 화면 속 세상은 화려하고 시끄러웠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고, 모두가 무언가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 속에 속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은 유진을 부러워했다. 대기업 임원 남편, 공부 잘하는 딸, 귀여운 아들, 서울의 넓은 아파트. 그녀는 ‘다 가진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텅 빈 껍데기 같았다.

거실 벽에 걸린 대형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2년 전의 민준과 유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의 유진은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그림도 그리며 멋지게 살 거라고 믿었다. ‘저 여자는 어디 갔지?’ 유진은 사진 속의 자신에게 물었다. 사진 속의 유진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박제된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명치 끝에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엄마였다. 유진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한 톤 높고 밝은 목소리, ‘행복한 딸’의 목소리로 변신했다. “어, 엄마. 웬일이야 아침부터?” “유진아, 밥은 먹었니? 서방은 출근 잘 했고?” “그럼, 다들 잘 나갔지. 나도 방금 청소 다 끝내고 차 한 잔 하려던 참이야.” “그래, 그래. 너는 참 야무져서 걱정이 없다. 참, 이번 주말에 이모네 식구들 온다는데 너희도 올 수 있니? 네가 온다고 하면 좋아할 텐데.” 또 가족 행사다. 지난달에도, 지지난 달에도 갔었다. 민준은 주말에는 쉬고 싶어 할 테고, 아이들은 학원 때문에 바쁘다. 결국 가서 일하는 건 유진 혼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거절하면 엄마가 실망할 테니까. “음… 민준 씨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아마 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잘 말해볼게.” “그래, 역시 우리 딸이다. 네가 오면 엄마가 든든해. 알지?” “응, 엄마. 나중에 또 통화해.” 전화를 끊자마자 유진의 얼굴에서 다시 표정이 사라졌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오면 든든해.’ 그 말은 칭찬일까, 아니면 족쇄일까. 그녀는 평생을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착한 엄마로 살아왔다.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김유진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 창가로 다가갔다. 15층 아래로 보이는 세상은 까마득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이마의 열을 식혀주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사라진다면. 그냥 연기처럼 팟, 하고 사라진다면. 누군가 나를 찾아줄까? 민준은 내가 없어서 불편해할 것이다. 와이셔츠가 다려져 있지 않아서, 아침밥이 없어서. 지우와 시우도 엄마가 없어서 칭얼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워하는 게 ‘나’일까, 아니면 내가 해주는 ‘기능’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 두려웠다. 유진은 눈을 떴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은 울고 있지 않았지만, 이미 죽어 있었다.

오전 11시. 아파트 안내 방송이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안내 말씀 드립니다. 오늘 오후 2시부터 단지 내 정전 작업이 있을 예정이오니…” 정전. 전기가 끊긴다. 유진은 그 단어가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시간. 그녀는 그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니, 사실은 영원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 숨어버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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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ồi 1 – Phần 2: Giọt Nước Tràn Ly

(Chủ đề: Áp lực xã hội, sự chối bỏ ước mơ và sự sụp đổ thầm lặng)

오후 1시. 유진은 ‘지우 엄마’라는 명찰을 달고 브런치 카페에 앉아 있었다. 학부모 모임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비싼 에그 베네딕트와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음식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들의 입은 오로지 자식 자랑과 남편의 승진, 그리고 사교육 정보 교환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유진은 그 소음 속에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집에 있을 때와는 딴판인, 세련된 원피스와 단정한 메이크업을 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 모임의 ‘여왕벌’이었다. 물론 본인은 원치 않는 왕관이었지만.

“지우 엄마는 진짜 좋겠다. 지우 이번에 수학 경시대회 또 금상 탔다며? 학원도 안 보내고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워?” 맞은편에 앉은 민석 엄마가 부러움 반, 질투 반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시선들이 일제히 유진에게 쏠렸다. 유진은 입가에 훈련된 미소를 띠었다.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애가 욕심이 좀 있어서 스스로 하는 편이라…” “아유, 겸손도 병이라니까. 엄마가 뒤에서 다 케어하니까 그렇지. 우리 애는 내가 아무리 들들 볶아도 안 되던데. 역시 엄마 머리를 닮아야 하나 봐. 이대 미대 나왔다고 했나? 역시 DNA가 달라.” 또 시작이었다. 유진의 스펙은 이들에게 그저 ‘머리 좋은 엄마’라는 인증서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붓을 놓을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남편 분도 이번에 본부장 승진 물망에 올랐다면서요? 세상에, 남편 잘나가지, 애들 똑똑하지, 본인은 예쁘지. 유진 씨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고민이란 게 없지? 그치?”

고민이 없다. 유진은 커피잔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미소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완벽하다고 찬양했다. 그 칭찬들이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그냥… 다들 비슷하죠, 뭐.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유진이 애써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대화는 계속해서 그녀를 ‘행복한 여자’의 틀에 가두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적당한 타이밍에 맞장구를 치며, 영혼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유리 진열장 안에 갇힌 마네킹이 된 기분이었다. 숨이 막혔다. 여기 있는 공기가 희박하게 느껴졌다.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유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을바람이 차가웠지만, 카페 안의 뜨거운 열기보다는 훨씬 상쾌했다. 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어머, 김유진 작가님? 저 기억하세요? 출판사 ‘푸른 숲’의 박 편집장이에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5년 만이었다. 박 편집장. 유진이 마지막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했던, 그리고 임신과 함께 작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곳. “아… 네, 편집장님. 잘 지내셨어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이현수 작가님이 신작 동화를 내시는데, 삽화가로 꼭 유진 작가님을 추천하셨어요. 작가님이 유진 씨 그 ‘따뜻하면서도 슬픈’ 색감이 딱이라면서 다른 사람은 싫다고 하시네요. 혹시… 다시 붓 잡으실 생각 없으세요?”

순간, 유진의 눈앞에 환상이 펼쳐졌다. 물감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실, 캔버스 위를 춤추는 붓, 완성된 그림을 볼 때의 짜릿한 전율. 그 모든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하고 싶다. 미치도록 하고 싶다. 입이 간질거렸다. ‘네, 할게요. 당장 할게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지우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시우는 유치원 하원 시간이 3시였고, 요즘 민준은 매일 야근이라 집안일을 도울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밤을 새워야 하는데, 체력이 버텨줄까? 밥은 누가 하지? 빨래는? 아이들 숙제는? 그녀의 머릿속 계산기는 차갑고 냉정했다. “…저기, 편집장님.” “네, 말씀하세요!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쇼윈도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장바구니를 든, 평범한 아줌마. “죄송해요. 제가… 지금은 상황이 좀 안 돼서요. 아이들이 아직 손이 많이 갈 나이라서… 좋은 기회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 그러시구나. 에이, 아쉽네요. 작가님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 연락드려본 건데. 알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상황 되면 꼭 연락 주세요.”

전화가 끊겼다. 뚜- 뚜- 뚜-. 유진은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거지? 스스로 날개를 꺾어버렸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길거리 한복판이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얼굴을 감쌌다. ‘재능이 아깝다’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나도 아는데. 나도 내가 아까운데. 그런데 나는 왜 나를 버려야만 할까.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이 왜 양립할 수 없는 걸까. 그녀는 근처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오후 4시: 시우 태권도 학원 픽업] [저녁 메뉴: 민준 – 갈비찜, 지우 – 샐러드] 눈물을 닦을 새도 없었다. 엄마 김유진은 슬퍼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마트로 향했다.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치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죄수처럼.

마트 안은 시끄러웠다. “타임 세일! 고등어 세일합니다!”, “시식하고 가세요!” 확성기 소리와 카트끼리 부딪치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거대한 소음 덩어리가 되어 유진을 덮쳤다. 평소라면 익숙했을 그 소리들이 오늘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카트 안에는 이미 무거운 짐들이 가득했다. 무, 배추, 우유, 샴푸, 세제… 가족들을 위한 물건들로 카트는 꽉 차 있었다. 정작 유진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고기 코너 앞에 섰을 때였다. 붉은색 고기 덩어리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현기증이 일었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어지러워…’ 카트를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주변의 소음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어? 저기요! 아줌마!”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을 들은 것 같았다. 유진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녀의 손에서 들려 있던 파스타 소스 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유리병이 산산조각 났다. 붉은색 토마토소스가 바닥에 튀었다. 마치 피처럼 붉고 끈적한 액체가 그녀의 흰 운동화를 덮쳤다. 유진은 그 붉은색을 바라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차가운 타일 바닥이 뺨에 닿았다.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이 편안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을 때는 낯선 천장이 보였다. 소독약 냄새. 마트 의무실이었다. “정신이 좀 드세요?” 나이가 지긋한 의무실 담당 직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수건을 건넸다. “빈혈이 심하신가 봐요. 혈압도 좀 낮고. 119 부르려다가 금방 깨어나실 것 같아서 안 불렀어요. 보호자한테 연락할까요?” 보호자. 민준. 유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잠깐 어지러웠나 봐요. 죄송합니다. 폐를 끼쳤네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몸은 여전히 솜처럼 무거웠지만, 지금 누워 있을 시간이 없었다.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좀 더 쉬시다 가시지…” 직원의 만류를 뒤로하고 유진은 짐을 챙겨 나왔다. 깨진 소스 병 값은 계산대에 지불했다. 깨진 유리 조각은 치워졌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난 균열은 그대로였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진은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만 몇 개 와 있었다. [지우: 엄마, 내 체육복 어딨어? 빨았어?] [시우 학원 선생님: 시우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지 계속 집에 가고 싶어 하네요.] 그리고 민준의 메시지. [민준: 오늘 좀 일찍 들어갈게. 밥 줘.]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쓰러졌는지, 아픈지, 힘든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그저 ‘필요한 존재’일 뿐이었다. 체육복을 찾아주고, 밥을 차려주는 기계. 서러움이 폭발할 것 같았다. 유진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민준에게 메시지를 썼다. ‘나 오늘 마트에서 쓰러졌어. 너무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누르지 못했다. 민준이 뭐라고 할지 뻔했다. ‘병원 가봐’, ‘영양제 좀 챙겨 먹지 그랬어’. 건조한 위로. 그게 더 비참할 것 같았다. 그녀는 썼던 글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거짓말을 썼다. 아주 작은 반항심이었다. 그가 나를 부러워하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아픈 게 아니라, 내가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 그가 질투라도 해주지 않을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유진: 여보, 나 오늘 몸이 좀 찌뿌둥해서 스파에 왔어. 마사지 좀 받고 늦게 들어갈 것 같아. 저녁은 시켜 먹을래?]

답장은 1분 만에 왔다. [민준: 스파? 팔자 좋네. 난 오늘 부장한테 깨져서 죽을 맛인데. 알았어, 대충 때울게. 푹 쉬시다 오세요 사모님.] ‘팔자 좋네.’ 그 네 글자가 유진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녀는 택시 뒷좌석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하하. 팔자가 좋대. 내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갈 뻔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내가 팔자 좋게 마사지나 받는 줄 아는구나. ‘사모님’이라는 비꼬는 호칭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인내심의 끈이었을 수도 있고, 민준에 대한 마지막 기대였을 수도 있다. 택시 차창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붉게 물든 노을이 강물 위에서 출렁거렸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슬펐다. 유진은 결심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은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학원에 있고, 민준은 퇴근 전이었다. 그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리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곧장 부엌으로 가서 고무장갑을 꼈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었다. 민준이 좋아하는 밑반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들. 3일 치 식량이 충분했다. 찌개거리를 손질해서 밀폐 용기에 담았다. 밥을 넉넉히 지어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그녀의 손은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표정은 서늘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것은 마지막 봉사였다. ‘내가 없어도 당분간은 굶지 않게 해 줄게. 이것이 나의 마지막 배려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진은 안방으로 들어가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아주 작은 기내용 캐리어였다. 옷은 많이 필요 없었다. 편한 바지 두 벌, 티셔츠 몇 장, 그리고 속옷. 화장품은 챙기지 않았다. 이제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거실 구석에 숨겨두었던 낡은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 그녀는 그것을 소중하게 가방 깊숙이 넣었다. 마지막으로 식탁 위에 앉아 펜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10년 동안 쌓인 원망, 섭섭함, 외로움. A4 용지 10장을 써도 모자랄 감정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감정을 삼켰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메모지에 딱 세 문장을 적었다.

[여보. 나 너무 지쳤어. 잠시만 나를 놓아줘요. 찾지 마.]

글씨가 약간 번져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 자국이었다. 유진은 결혼반지를 뺐다. 약지 손가락에 남은 하얀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반지를 메모지 위에 올려두었다. 묵직한 금속성이 식탁 유리에 닿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였다. 곧 아이들이 올 시간이었다. 마주치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지금 나가야 한다. 유진은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익숙한 거실, 아이들의 냄새, 남편의 흔적.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 허공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가족에게? 아니면 그동안 방치해 둔 자신에게? 그녀는 도어락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쾅. 그것은 감옥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니라, 감옥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유진은 거울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1층 로비를 빠져나와 어둠이 깔린 거리로 걸어 나갔다. 어디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디든 여기보다는 나을 테니까.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에서 자유의 냄새가 났다. 아주 쓰리고, 동시에 달콤한 냄새였다.


[Word Count: 2,550]

🟢 Hồi 1 – Phần 3: Lời Tạm Biệt Lặng Lẽ

(Chủ đề: Sự trống vắng hiện hữu và cú tát của hiện thực)

오전 6시 30분. 민준의 스마트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평소라면 이 타이밍에 유진이 들어와서 커튼을 걷으며 “여보, 일어나요. 늦겠어.”라고 말해야 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와 아침 햇살, 그리고 부엌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찌개 냄새. 그것이 민준이 알고 있는 ‘아침’의 정의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 안은 어두웠고, 적막했다. 옆자리를 더듬어 보았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갑게 식은 시트뿐이었다. “으음… 유진아?” 민준은 잠긴 목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화장실에 갔나? 아니면 먼저 일어나서 부엌에 있나?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찌뿌둥했다. 어제 부장에게 깨진 스트레스가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목이 탔다. 물을 마시고 싶었다.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어제와 똑같이 깨끗했다. 아니, 평소보다 더 섬뜩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보일러가 꺼진 것처럼 서늘한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유진아? 어디 있어?” 그는 부엌 쪽을 향해 다시 한번 불렀다.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밥 냄새도, 국 냄새도 나지 않았다. 싱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그제야 민준은 짜증이 솟구쳤다. ‘뭐야, 아직도 자는 거야? 어제 스파 갔다 왔다더니 피곤한가?’ 물론 아내가 늦잠을 잘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었다. 넥타이도 챙겨줘야 하고, 아침도 든든히 먹어야 하는데. 그는 안방으로 다시 돌아가려다 멈췄다. 유진은 침대에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 방 문을 열어보았다. 지우와 시우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유진만 없었다.

“아침부터 어디 간 거야…” 민준은 투덜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찬물이라도 마셔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냉장고를 여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냉장고 안은 평소와 달랐다. 반찬통들이 군대 사열처럼 오와 열을 맞춰 꽉꽉 채워져 있었다. 투명한 용기마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북어국 – 냄비에 덜어서 데워 드세요.] [시우 멸치볶음 – 전자레인지 30초.] [지우 샐러드 – 소스는 따로 담았음.] 민준은 멍하니 그 메모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며칠 어디 여행이라도 가나? 나한테 말도 없이?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유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마 장을 보러 갔거나, 급하게 친정에 무슨 일이 생겨서 잠깐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했다.

그때, 안방에서 지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엄마 어디 갔어? 내 교복 블라우스 다려놨냐고 물어봐 줘!” “아빠, 나 쉬 마려워…” 시우도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평화롭던 아침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엄마 잠깐 나간 것 같다. 기다려 봐.” 민준은 지우에게 대충 대답하고 시우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아빠, 엄마는? 엄마가 쉬 시켜줘야 하는데.” “아빠가 해 줄게. 그냥 싸.” “싫어! 엄마가 좋아! 엄마 불러 줘!” 시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침부터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자 민준의 머릿속 혈관이 툭툭 뛰기 시작했다. “그냥 좀 해! 엄마 금방 온다니까!”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우가 깜짝 놀라 딸꾹질을 시작했다. 지우가 씩씩거리며 나왔다. 구겨진 블라우스를 들고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 이거 안 다려져 있잖아. 어제 내놓으라고 했는데 엄마 뭐 한 거야?” “야, 박지우. 너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네가 좀 다려 입으면 되잖아.” “아빠는 할 줄 알아? 엄마가 다 해주니까 나도 모르지! 아, 지각하겠네 진짜!”

민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집안은 유진이 없으면 단 10분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젠장!” 민준은 핸드폰을 소파에 던졌다. 전화를 안 받는다. 일부러 끈 게 분명했다. ‘어제 내가 보낸 문자 때문에 삐졌나? 그렇다고 아침부터 잠적을 해? 애들 학교는 보내놓고 시위를 하든가 해야지, 무책임하게.’ 그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고작 문자 한 통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나 싶었다. “일단 씻고 나와. 아빠가 밥 차려줄게.” 그는 호기롭게 부엌으로 갔지만, 곧 막막해졌다. 밥솥은 어디 있지? 국은 얼마나 데워야 하지? 가스레인지 불은 어떻게 켜더라? (그는 최근에 바뀐 인덕션 사용법조차 몰랐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은 7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결국 그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차가운 상태로 식탁에 꺼내 놓았다. 밥은 밥솥에 있었지만 떡처럼 굳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 지우가 밥을 한 숟가락 뜨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먹어.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아, 맛없어. 나 안 먹어. 매점 가서 빵 사 먹을래.” 지우는 가방을 챙겨 휑하니 나가버렸다. 시우는 식탁에 앉아 멸치를 뒤적거리며 울먹였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언제 와?” “저녁에 올 거야. 빨리 먹어. 유치원 버스 놓치겠다.”

전쟁 같은 출근 준비가 끝났다. 시우를 겨우 달래서 버스에 태워 보내고, 민준은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넥타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옷장을 뒤졌지만 그가 원하던 네이비 넥타이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벗어놓은 양말과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집은 엉망이 되었다.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식탁 의자에 주저앉았다. 고요함. 다시 찾아온 이 고요함이 너무나 낯설었다. 유진이 있었을 때는 이 고요함이 ‘평화’였지만, 지금은 ‘고립’처럼 느껴졌다. 그는 물을 마시기 위해 식탁 유리컵을 집어 들었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식탁 구석에 놓인 작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의 혼란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식탁 한가운데 놓인 작은 종이 한 장과, 그 위에 올려진 은색 고리.

결혼반지였다. 민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집어 들었다. 안쪽에 ‘MJ & Y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유진이 그토록 아끼던 반지였다. 설거지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절대 빼지 않았던, 마치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던 반지. 그 반지가 주인을 잃고 차가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 시위도 아니었다. 그는 반지를 쥐고 종이를 집어 들었다. 유진의 정갈한 글씨체가 보였다.

[여보. 나 너무 지쳤어. 잠시만 나를 놓아줘요. 찾지 마.]

세 문장. 단 세 문장이었다. 민준은 그 짧은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쳤다고? 뭐가? 집에서 살림하고 애들 키우는 게 그렇게 지칠 일인가?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내가 돈 벌어다 주고, 주말에는 가끔 외식도 시켜주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서? 처음에는 화가 났다.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그 분노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잠시만 나를 놓아줘요.’ ‘잠시만’이라는 단어가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 뒤에 붙은 ‘찾지 마’라는 말은 단호했다. 민준은 고개를 들어 텅 빈 집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소파 위의 쿠션, 베란다의 화분들. 모든 곳에 유진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그런데 유진만 없었다. 마치 유령의 집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꺼져 있었다. 카카오톡을 열었다. 어제 자신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보였다. [스파? 팔자 좋네…] 그 메시지 옆에 ‘1’은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그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떠났다. 민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방아쇠가 되었을까? 아니, 고작 그 말 때문에? 그는 부정하고 싶었다. 유진은 강한 여자였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무너질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장난치는 거지?” 그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메마르게 갈라져 나왔다. “김유진! 나와! 거기 숨어 있는 거 다 알아! 장난 그만 쳐!” 그는 미친 사람처럼 안방 드레스룸을 열어젖혔다. 텅 비어 있었다. 유진의 옷들은 그대로 걸려 있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자세히 보니 그녀가 평소에 즐겨 입던 편한 옷들 몇 벌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구석에 있던 작은 여행용 캐리어가 사라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준은 드레스룸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실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아내는 떠났다. 밥을 차려주고, 옷을 다려주고, 아이들을 챙겨주고, 나의 짜증을 받아주던,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했던 그 여자가 증발해 버렸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목을 조르는 듯한 답답함. 민준은 자신의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집안이 너무 조용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귀를 때렸다. 째깍, 째깍, 째깍. 그 소리가 마치 “너는 이제 혼자야, 너는 이제 혼자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민준은 유진이 남긴 쪽지를 구겨질 정도로 꽉 쥐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이 집의 가장이고, 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이 사라진 지 불과 12시간도 되지 않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왕이 아니었다. 유진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는 멍하니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 해가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직 민준의 세상만이 멈춰 버렸다. 그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늦을 것 같다고, 아니, 오늘 못 갈 것 같다고.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회사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집의 기둥이 뽑혀 나갔다.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유진의 결혼반지를 다시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금속 링이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환청이 들렸다. 민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에서 짠내 나는 땀 냄새가 났다. 아니, 그것은 눈물 냄새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슬픔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공포였다. 오늘 밤, 텅 빈 집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공포. 내일 아침, 또다시 혼자 눈을 떠야 한다는 공포. 김유진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지옥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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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ồi 2 – Phần 1: Cơn Bão ập Đến

(Chủ đề: Sự sụp đổ của trật tự và nỗi cô đơn giữa đám đông)

유진이 떠난 지 겨우 3일이 지났다. 고작 72시간.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완벽했던 ‘모델 하우스’는 난민촌이나 다름없는 몰골로 변해버렸다. 현관에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들이 뒤엉켜 있었고, 거실 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굴러다녔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윤기가 흐르던 마룻바닥은 끈적거리는 얼룩으로 뒤덮였다.

저녁 8시. 민준이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향긋한 음식 냄새가 아니라 퀴퀴한 냄새였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거리에서 나는 음식물 썩는 냄새, 며칠째 환기를 시키지 않아 고인 탁한 공기. “아빠, 왔어?”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지우가 건성으로 인사했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너네… 밥은?” 민준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물었다. “아직. 시우가 배고프다고 난리 치다가 방금 잠들었어. 아빠 기다리다가.”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뭐라도 시켜 먹지.” “아빠가 카드 안 주고 갔잖아. 그리고 냉장고에 먹을 거 하나도 없어. 엄마가 해놓고 간 반찬, 어제 다 먹었단 말이야.” 지우의 말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민준은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침에 정신없이 나가느라 아이들에게 저녁 챙겨 먹을 돈을 주는 것을 깜빡했다.

민준은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개수대는 아비규환이었다. 3일 동안 쓴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컵 밑바닥에 남은 우유가 상해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라면 국물이 말라비틀어진 냄비, 밥알이 덕지덕지 붙은 숟가락들. 유진이 있었을 때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그녀는 식사가 끝나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른 것처럼 30분 안에 부엌을 반짝거리는 상태로 되돌려 놓곤 했다. 민준은 그게 마법인 줄 알았다. 저절로 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이 아니라, 유진의 손목과 허리를 갈아 넣은 노동의 결과였다는 것을, 이제야 눈앞의 쓰레기 더미를 보며 깨닫고 있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배달 앱을 켰다. 치킨, 피자, 짜장면… 3일 내내 배달 음식이었다. 속이 더부룩했다. ‘된장찌개 먹고 싶다.’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유진이 끓여주던, 두부와 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멸치 육수로 깊은 맛을 낸 그 된장찌개. 퇴근하고 돌아와서 그 국물 한 숟가락 뜨면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갔었는데.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생각을 지웠다. 지금 그 여자는 없다.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런 여자가 해 준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조차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또 피자를 주문했다.

잠시 후, 안방에서 시우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빠… 엄마 왔어?” 눈을 뜨자마자 찾는 게 엄마다. 민준은 가슴이 콕 찔리는 것 같았다. “아니, 엄마 아직 안 왔어. 조금 더 있어야 해.” “언제 오는데? 나 유치원 가방도 엄마가 챙겨줘야 하는데… 내일 준비물 뭐 가져가는지도 모르는데…” 시우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알림장 봐. 알림장에 써 있을 거 아니야.” “나는 글씨 아직 잘 못 읽는단 말이야! 엄마는 그냥 다 알아서 해줬는데 아빠는 왜 몰라?” 시우가 악을 쓰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민준의 신경을 긁었다. “야! 박시우! 그만 좀 울어!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네가 애기야?” 민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7살짜리 아들에게 터져버린 것이다. 시우는 겁에 질려 딸꾹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우가 벌떡 일어났다. “아빠는 왜 애한테 소리를 질러? 시우가 뭘 안다고! 엄마 없어서 제일 힘든 건 시우란 말이야!” “너는 잘한 거 있어? 중학생이나 돼서 동생 하나 못 챙기고, 집구석이 이게 뭐야? 청소기 한번 돌리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내가 식모야? 나도 시험 기간이라고! 엄마가 하던 걸 왜 나한테 떠넘겨? 아빠가 하면 되잖아!” “뭐? 이 기집애가 말하는 뽄새 좀 보소. 내가 너네 먹여 살리려고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누가 고생하래? 엄마 데려오라고! 엄마 찾아오란 말이야!”

지우가 소리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쾅! 하는 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다. 시우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었다. 민준은 넥타이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지옥이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다. 그는 시우를 달랠 기운도 없었다. 도망치듯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유진과 결혼하며 끊었던 담배가 집에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김유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보고 있어? 네가 없으니까 집 꼬라지가 아주 볼만하지? 속이 시원해?” 그는 허공에 대고 욕설을 섞어 중얼거렸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원망 밑바닥에는 지독한 그리움과 공포가 깔려 있었다. 자신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가장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수치심.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빨래통이 토해내듯 넘쳐 있었다. 수건이 한 장도 없었다. “아빠! 수건 없어! 나 머리 감았는데 어떡해!” 욕실에서 지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 저기 건조대 찾아봐.” “없다고! 다 썼다고! 아빠가 어제 빨래 돌린다며!” 민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제 피자를 먹고 맥주 한 캔을 마시고는 그대로 소파에서 잠들어버렸다. 세탁기 버튼 누르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냥… 휴지로 대충 닦아. 아니면 아빠가 드라이기로 말려줄게.” “아 진짜 미치겠네! 더러워 죽겠어!” 지우는 젖은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욕실을 나와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민준은 욕실로 들어가 젖은 수건들을 주워 모았다. 눅눅하고 냄새나는 수건들. 유진은 매일 아침 뽀송뽀송하고 햇볕 냄새가 나는 수건을 욕실 선반에 채워두곤 했다. 호텔 수건처럼 예쁘게 접어서. 그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유진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민준은 냄새나는 젖은 수건을 얼굴에 묻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젖은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았다. 거울 속의 남자는 3일 만에 10년은 늙어 보였다. 눈 밑은 퀭했고, 수염은 거뭇거뭇하게 자라 있었다. 와이셔츠는 다려입지 못해 쭈글쭈글했다. 대기업 본부장 후보의 말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회사에서도 실수가 이어졌다. 회의 시간에 멍하니 있다가 사장의 질문을 놓쳤고, 결재 서류에 서명을 빼먹기도 했다. “박 부장, 요새 무슨 일 있어? 사람이 왜 이렇게 나사가 풀렸어?” 김 상무가 지나가며 툭 던진 말에 민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집안에… 조금 일이 있어서요.” “집안일? 제수씨 아파? 거 왜, 내조의 여왕이라며. 자네 와이프 덕분에 자네가 일에만 집중하는 거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내조의 여왕. 그 여왕이 파업을 선언하고 사라졌다. 아니, 폐위된 것은 여왕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점심시간, 민준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회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10번 정도 울렸다. 꺼져 있지 않았다! 민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전화를 켰구나. 신호를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그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전화는 끝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삐- 소리가 나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민준은 핸드폰을 입에 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화를 낼까? 빌까? 협박을 할까?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유진아. 나야. 민준이.” 목소리가 떨렸다. “재미있어? 나 엿먹이는 거 성공했네. 집안 꼴 엉망이고, 애들은 울고불고 난리고, 나도 회사에서 미친놈 취급 받고 있어. 이제 속이 좀 풀려? 당신이 원한 게 이거야?” 화를 내려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밥은 먹었어? 어디서 자는 거야? 돈은 있고? …지우랑 시우가 당신 많이 찾아. 나도… 나도 힘들어. 제발 전화 좀 줘. 우리가 잘못했어. 응? 돌아와.” 마지막 말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녹음이 끝났다. 민준은 허탈하게 난간에 기대앉았다. 서울의 하늘은 뿌연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미래처럼.

그 시각, 학교에서 지우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체육 시간이었다. 지우는 체육복을 가져오지 못했다. 빨래통에 처박혀 있는 것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지우, 체육복 안 가져왔어? 벌점 1점.” 체육 선생님의 건조한 목소리. 친구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야, 너네 엄마 입원하셨냐? 요새 너 꼴이 왜 그래? 교복에서 냄새나.” 짝꿍 민지가 코를 킁킁거리며 물었다. 지우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니거든? 우리 엄마 여행 갔거든? 유럽으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더 비참했다. 엄마는 여행을 간 게 아니라, 우리를 버린 거니까.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데 목이 메었다. 오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었다. 엄마가 해주던 것보다 훨씬 짜고 매웠다. 지우는 밥을 먹다 말고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껌 종이를 꺼냈다. 어제 밤, 엄마의 화장대 서랍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서랍 깊숙한 곳, 화장솜 박스 뒤에 숨겨져 있던 비닐봉지. 그 안에는 다 먹은 초코바 껍질, 소시지 비닐, 컵라면 뚜껑들이 가득했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 것 같았다. 엄마는 항상 식구들이 밥 먹을 때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 떠오고, 국 더 퍼오고, 반찬 리필하고. 정작 엄마가 밥상에 앉을 때는 반찬이 다 식거나 남은 것뿐이었다. “엄마는 배 안 고파. 너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그 말을 믿었다. 바보처럼. 엄마는 배가 불렀던 게 아니라, 배고픔을 숨겼던 거였다. 모두가 잠든 밤, 혹은 아무도 없는 낮에, 부엌 구석에 서서 저런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들킬까 봐 서랍 깊숙이 쓰레기를 숨겨뒀던 것이다. 지우는 그 쓰레기들을 보며 울었었다. 엄마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게 자신인 것 같아서, 그 죄책감이 너무 무거워서 울었다. ‘엄마, 나 이제 투정 안 부릴게. 반찬 투정 안 할게. 밥 안 먹는다고 떼 안 쓸게.’ 지우는 급식판을 노려보며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기도를 들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3일째 밤이 깊었다. 민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집안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하지만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댐이 무너진 것 같았다. 유진이라는 댐이 막아주고 있던 온갖 생활의 오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를 덮친 기분이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민준은 소파에서 튀어 올랐다. 유진이다! 열쇠를 안 가져가서 벨을 누르는 거야! 그는 현관으로 질주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문을 열면 그녀가 서 있을 것이다. 약간은 미안하고, 약간은 토라진 얼굴로. 그러면 꽉 안아줘야지. 다시는 놓지 말아야지. 그는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유진아!”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유진이 아니었다. 퀵서비스 기사였다. “박민준 씨 댁 맞습니까? 퀵 왔습니다.” 기사는 헬멧을 쓴 채 작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민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기대가 컸던 만큼 절망은 더 깊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누가… 보낸 건가요?” “발신인은 따로 안 적혀 있는데요. 주소만 보고 왔습니다.” 기사는 사라졌다. 민준은 현관에 서서 봉투를 뜯었다.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그것은 법원 양식이었다. [이혼 소송 소장]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것은 유진이 보낸 편지였다. 하지만 자필 편지가 아니었다. 타이핑된 문서였다.

[박민준 씨에게.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집이 얼마나 엉망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겠죠. 당신이 입고 있는 팬티, 양말, 셔츠 하나하나가 저절로 세탁되고 다려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 당신이 먹던 따뜻한 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당신의 아내였지, 가사 도우미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지난 10년 동안 나를 성능 좋은 가전제품 취급했어요. 고장 나지도 않고, 불평도 없는. 나를 찾지 말라고 했지만, 당신 성격에 분명히 찾으려 들겠죠. 그래서 경고해요. 만약 나를 억지로 찾아내려 하거나, 흥신소를 쓰거나, 친정을 괴롭히면, 그때는 정말로 이혼 서류가 갈 거예요. 지금은 그냥 ‘별거’예요. 내가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요. 아이들은…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도 아빠잖아요. 절반의 책임은 지세요.

  • 유진]

민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편지의 내용은 차갑고 논리적이었다. 그동안 유진이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가 활자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가전제품.’ 그 단어가 민준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는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유진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랑은 ‘편리함’에 대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준은 문을 닫고 들어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3일 전에 유진이 남기고 간 반지가 여전히 놓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반지 옆에 내려놓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헛웃음이 나왔다. “하… 하하… 김유진. 무서운 여자였네.” 그는 몰랐다. 자신이 10년 동안 함께 산 여자가 이렇게 단단하고 무서운 사람인 줄은.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녀는 단순히 토라진 게 아니라,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집안의 독재자였던 자신을 몰아내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혁명.

민준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 불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폭풍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Word Count: 3,150]

🔵 Hồi 2 – Phần 2: Bí Mật Trong Ngăn Kéo

(Chủ đề: Nhật ký của người vợ đã chết & Sự thật về chứng trầm cảm cười)

유진이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집안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폐허처럼, 엉망진창인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민준은 이제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기계적으로 출근했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사건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주말 아침, 시우가 거실에서 놀다가 유리 조각에 발을 베였다. 며칠 전 민준이 깨뜨린 컵 조각이 소파 밑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앙! 아빠! 피 나! 아파!” 시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민준은 혼비백산했다. 발바닥에서 선홍빛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만 있어봐! 아빠가 약 가져올게! 약… 약이 어디 있더라?” 민준은 거실 수납장을 뒤졌다. 없었다. 부엌 찬장을 열었다.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10년을 산 집인데, 구급상자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항상 “여보, 시우 다쳤어!”라고 소리치면 유진이 마법처럼 연고와 밴드를 들고 나타났으니까. “아빠! 빨리! 너무 아파!” 시우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민준의 손은 더 떨렸다. 그는 결국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유진의 화장대, 서랍장, 옷장… 닥치는 대로 열어젖혔다. “제발, 제발 어디 있는 거야!”

서랍장 맨 아래칸을 열었을 때였다. 너무 세게 당긴 탓인지 서랍이 레일에서 빠져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에 있던 양말과 속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준은 짜증을 내며 서랍을 다시 끼워 넣으려 했다. 그때, 서랍이 빠져나온 텅 빈 공간 안쪽 깊숙한 곳에 무언가가 보였다. 까만색 하드커버 노트. 누가 봐도 숨겨놓은 것이었다. 옷가지들 밑에, 서랍 안쪽 깊숙이 테이프로 고정해 두었던 흔적이 있었다. 서랍이 떨어지면서 그 테이프가 떨어진 것이다.

민준은 홀린 듯 그 노트를 집어 들었다. 겉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가계부인가? 아니면 아이들 육아 일기? 그는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넘겼다. 날짜는 5년 전이었다.

[2019년 4월 10일. 흐림. 오늘 민준 씨가 승진했다. 축하 파티를 했다. 그는 웃고 있었고, 아이들도 웃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거울을 봤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은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내조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칭찬이 목을 조르는 밧줄 같다. 오늘 나는 축하주를 마시는 대신, 화장실에 들어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행이다.]

민준의 호흡이 멈췄다. 2019년 4월. 기억난다. 자신이 과장으로 승진했던 날. 그날 유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처럼 보였다. 갈비찜을 하고, 케이크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비명을 질렀다고? 민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음 장을 넘겼다.

[202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민준 씨가 선물로 최신형 식기세척기를 사줬다. “이제 설거지 편하게 해. 당신 손 거칠어지는 거 싫어.” 그는 내가 기뻐할 줄 알았다. 나는 기뻐하는 척 연기했다. “어머, 너무 고마워요. 진짜 갖고 싶었던 건데.” 거짓말. 내가 갖고 싶었던 건 식기세척기가 아니라, 하루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니면 캔버스. 아니면 물감. 식기세척기는 나를 위한 선물이 아니다. 나를 더 효율적인 가사 도우미로 만들기 위한 기계일 뿐이다. 그날 밤, 나는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베란다에 서 있었다. 뛰어내리면 아플까? 아니, 뛰어내리면 이 지긋지긋한 연기를 끝낼 수 있을까? 시우가 깨서 울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난간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미친…” 민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살 충동.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었다. 유진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자신이 선물한 식기세척기를 보며 죽음을 생각했다니. 민준은 배신감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이 알던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 그 온화하고, 긍정적이고, 항상 미소 짓던 김유진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는 미친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일기는 띄엄띄엄 이어졌지만, 내용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글씨체도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다.

[2022년 5월 8일. 어버이날. 시댁 식구들이 왔다. 시어머니는 “너는 집에서 노니까 살이 더 찐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과일을 깎았다. 칼이 손가락을 스쳤다. 피가 났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보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가 무섭다. 점점 감정이 사라진다.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그냥 텅 빈 껍데기가 걸어 다니는 것 같다. 김유진은 죽었다. 24살의 화가 지망생 김유진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지금 여기 있는 여자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표를 단 좀비다.]

[2023년 1월 1일. 새해 소원을 빌었다. ‘제발 저를 버려주세요.’ 가족들이 나를 좀 버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나쁜 년이 되어서, 그들이 나를 혐오하고 쫓아내 줬으면 좋겠다. 내 발로 나갈 용기가 없다. 나는 겁쟁이니까. 차라리 민준 씨가 바람을 피웠으면 좋겠다. 차라리 사업이 망해서 나를 짐스러워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죄책감 없이 떠날 수 있을 텐데.]

민준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져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노트 위로 뚝뚝 떨어졌다. ‘바람을 피웠으면 좋겠다니…’ 그녀는 자신이 불행해지기를 바랐다. 아니, 가족이 파탄 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이 감옥에서 탈출할 명분이 생기니까. 민준은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유진이 행복한 줄 알았다. 좋은 집에 살고, 남편 돈 잘 벌어오고, 아이들 건강하니까. 여자로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유진에게 이 집은 가스실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가스실. 그리고 그 가스실의 간수는 바로 자신이었다.

마지막 장. 날짜는 유진이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2023년 10월 15일. 오늘 마트에서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 민준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팔자 좋네”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여기서 죽어버려도, 그는 슬퍼하기보다 불편해하겠구나. 장례식장에서도 “이제 밥은 누가 해주지?”라고 걱정하겠구나. 더 이상은 안 된다. 나는 살고 싶다. 다시 숨을 쉬고 싶다. 내일 나는 떠날 것이다. 이것은 가출이 아니다. 이것은 살기 위한 탈출이다. 김유진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심폐소생술이다. 미안해, 지우야, 시우야. 하지만 엄마가 살아야 너희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의 엄마는 너희를 사랑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노트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민준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으아아아아…” 그 소리는 거실까지 울려 퍼졌다. 발에 밴드를 붙이고 있던 시우가 깜짝 놀라 안방을 쳐다봤다. 지우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 왜 그래?” 지우가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왔다. 난장판이 된 옷가지들 사이, 웅크리고 앉아 오열하는 아빠의 모습. 지우는 처음 보는 광경에 얼어붙었다. 아빠는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항상 강하고, 무뚝뚝하고, 엄격했던 아빠가 저렇게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민준은 지우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진 일기장을 가슴에 품었다. 이것은 유진의 유서였다.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어가던 여자의 피 맺힌 절규였다. “내가… 내가 죽였어…” 민준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지우가 다가왔다. “내가 엄마를 죽이고 있었어… 10년 동안… 매일매일 조금씩…”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 충혈된 눈. “지우야, 아빠가… 아빠가 엄마를 너무 외롭게 했어. 엄마가 그냥 밥 해주는 사람인 줄 알았어. 엄마가 아픈 줄도 모르고… 나만 힘들다고 징징거렸어.” 지우의 시선이 민준의 손에 들린 검은 노트로 향했다. 직감적으로 엄마의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지우는 아빠 옆에 털썩 앉았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나도 그랬어…” 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엄마가 귀찮았어. 엄마가 챙겨주는 거 당연하게 생각하고, 잔소리한다고 짜증만 냈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서 청소할 때, 한 번도 고맙다는 말 안 했어. 엄마 표정이 어땠는지… 한 번도 안 봤어.”

부녀는 난장판이 된 방바닥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집안은 쓰레기장처럼 엉망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순간만큼은 가장 진실했다. 그동안 그들을 묶고 있던 것은 유진의 헌신이었고, 그들은 거머리처럼 유진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이제 숙주가 사라지자, 거머리들은 고통 속에서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고 있었다.

민준은 비틀거으며 일어났다. 일기장을 금고에 넣듯이 소중하게 책상 서랍에 넣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것은 단순한 부부 싸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구조 신호(SOS)였다. 유진이 살기 위해 도망쳤다면, 그녀가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남편의 도리였다. 하지만 어떻게? 억지로 끌고 오면 그녀는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그녀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민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찾아야 한다. 끌고 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인하기 위해서.’ 그녀가 살아있는지. 밥은 먹는지. 그리고… 지금은 웃고 있는지.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지난번 퀵서비스 봉투에 적혀 있던 발신지 주소는 없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유진의 카드 내역. 그는 컴퓨터를 켜고 유진의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하려 했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몰랐다. 생일? 결혼기념일? 아이들 생일? 다 틀렸다. 그는 좌절했다.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문득 일기장에서 봤던 날짜가 떠올랐다. 2014년 5월 20일. 일기장 첫 페이지에 적혀 있던 날짜. 유진이 처음으로 그림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던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결혼 전의 날짜. 유진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던 날.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0520] ‘로그인되었습니다.’

민준은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유진의 비밀번호는 가족과 관련된 숫자가 아니었다. 오로지 그녀 자신, 화가 김유진으로 빛나던 시절의 날짜였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기억해 줘. 엄마이기 이전의 나를 기억해 줘.’ 카드 내역이 화면에 떴다. [10월 16일 –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10월 16일 – 강릉 하나로마트] [10월 17일 – 바다 화방] 강릉이었다. 바다 화방. 그 이름이 민준의 가슴을 때렸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민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무턱대고 찾아갔다가는 유진이 더 멀리 달아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꼴로 찾아가면 안 된다. 그는 거울을 보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냄새나는 중년 남자. 이런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설 자격이 없었다.

민준은 거실로 나갔다. “지우야.” 지우가 젖은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청소하자.” “어?” “엄마가 돌아왔을 때, 이 꼴을 보면 다시 도망가고 싶을 거야. 엄마가 없어도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아니, 적어도 엄마가 돌아올 자리는 깨끗하게 만들어놔야지.” 민준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가장의 권위가 아닌, 참회하는 죄인의 결기였다. “너는 네 방 치워. 아빠는 거실이랑 부엌 치울게. 시우는 장난감 정리하라고 해.” 지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날 밤, 민준과 아이들은 밤이 새도록 집을 치웠다. 물론 유진이 하던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구석엔 먼지가 있었고, 설거지한 그릇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땀을 흘리며 움직였다. 유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민준은 곰팡이 핀 찌개 냄비를 닦으며 울었다. 수세미질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이렇게 역한 줄 몰랐다. ‘유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는 속으로 수천 번 사과했다.

새벽 3시.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났다. 집안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조금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웠다. 온기가 없었다. 민준은 깨끗해진 식탁에 앉아,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맨 뒷장에 자신의 글을 적어 넣었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진아. 너의 일기를 봤어. 훔쳐봐서 미안해. 하지만 덕분에 알았어. 내가 살인자였다는 걸. 너를 죽인 건 나였어. 찾지 말라고 했지. 알았어. 당장은 안 갈게. 하지만 아주 안 갈 수는 없어. 네가 살아있는지, 밥은 먹는지, 웃고 있는지 확인은 해야겠어. 멀리서 보기만 할게. 너의 숨을 막지 않을게. 그냥… 네가 김유진으로 살고 있는 모습, 한 번만 보고 싶어.]

민준은 노트를 덮었다. 그는 이제 목표가 생겼다. 아내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 그 옛날, 자신이 사랑했던, 눈이 반짝이던 화가 지망생 김유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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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ồi 2 – Phần 3: Cuộc Tìm Kiếm Trong Vô Vọng

(Chủ đề: Màu xanh Cerulean và chiếc bánh mì nguội lạnh)

강릉의 바다는 짙푸른 색이었다. 서울의 회색 빌딩 숲과는 전혀 다른, 날것 그대로의 파란색. 유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옥탑방 창가에 서 있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낡은 샷시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윙윙 소리를 냈고, 벽지 곳곳에는 곰팡이 자국이 피어 있었다. 서울의 50평 아파트 드레스룸보다도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이 좁고 누추한 방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는 그녀가 치워야 할 남편의 양말도, 챙겨야 할 아이들의 준비물도 없었다. 오직 그녀의 숨소리와 파도 소리뿐이었다.

그녀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며칠 전 ‘바다 화방’에서 사 온 이젤을 펴고 캔버스를 올렸다. 10년 만이었다. 새하얀 캔버스를 마주하는 순간, 손이 떨려왔다. 두려움이었다. ‘내가 다시 그릴 수 있을까? 내 손은 굳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녀는 물감 튜브를 집어 들었다. ‘세룰리안 블루(Cerulean Blue)’.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 투명하면서도 깊은 바다를 닮은 색. 뚜껑을 열자 알싸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순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한 희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밥 짓는 냄새, 섬유 유연제 냄새, 음식물 쓰레기 냄새… 그동안 그녀를 감싸고 있던 생활의 냄새들이 순식간에 지워지는 것 같았다. 유진은 붓을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흰 캔버스 위로 파란 선을 그었다. 쓱-. 붓 끝에서 바다가 태어났다. 그녀의 입가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진짜 미소가 번졌다.


같은 시각, 민준은 강릉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주말이었다. 아이들은 본가 어머니에게 맡겼다. “회사 일로 지방 출장을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애미 없는 집구석에 애비까지 나돌아다니냐”며 혀를 찼지만, 아이들을 받아주었다. 민준은 엑셀을 밟았다. 조수석에는 유진의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그를 강릉으로 이끌고 있었다.

강릉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2시를 넘기고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식욕은 없었다. 그는 곧장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로 향했다. [바다 화방]. 유진의 카드 명세서에 찍혀 있던 곳. 오래된 간판이 삐걱거리는 작은 가게였다. 민준은 차를 세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가게 안은 좁았지만 온갖 미술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감 냄새가 훅 끼쳐왔다. 카운터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노신사가 고개를 들었다. 민준은 주춤거리며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뭐 좀 여쭤보려고요.” 민준은 핸드폰을 꺼내 유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결혼 전,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이었다. 최근 사진들은 모두 아이들과 함께 찍은 것뿐이라, 유진만 독사진으로 나온 건 이 12년 전 사진이 제일 선명했다. “혹시… 며칠 전에 이 여자가 여기 다녀가지 않았나요?”

주인은 안경을 고쳐 쓰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음… 며칠 전이라…” “키는 163 정도고, 머리는 어깨까지 오고요. 좀 말랐습니다. 그리고… 좀 슬퍼 보였을 수도 있어요.” 민준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주인이 무릎을 탁 쳤다. “아, 기억납니다. 사흘 전쯤이었나? 비가 오던 날이었지.” 민준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맞습니까? 확실해요?” “확실해요. 잊을 수가 없지. 들어올 때부터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었거든.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다 맞고 들어와서는, 물감을 찾더군요.” “뭘… 샀습니까?” “기본적인 것들요. 캔버스, 붓 세트, 오일… 아, 그리고 파란색 물감을 유독 많이 샀어요. 세룰리안 블루만 세 개를 집더군.” 세룰리안 블루. 민준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파란색이요? 제 아내는… 베이지색이나 파스텔 톤을 좋아하는데요. 집 인테리어도 다 그런 색이고, 옷도 다 그런 색만 입거든요.” 주인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생, 그건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 ‘무난한 색’이지. 눈에 띄지 않고, 튀지 않고, 어디에나 섞여 들어가는 색. 보통 자신을 숨기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색을 고르지.” 민준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유진이 입던 베이지색 카디건, 베이지색 커튼, 아이보리색 소파. 민준은 그게 유진의 취향인 줄 알았다. “당신은 참 차분하고 우아해.”라고 칭찬했었다. 하지만 그건 취향이 아니라 보호색이었다. 자신을 지우기 위한.

“그 여자분, 물건을 계산하면서 그러더군요. ‘이 색이 너무 그리웠어요.’라고. 손을 보니까 굳은살이 박혀 있긴 한데, 오랫동안 붓을 놓았던 손이었어. 그런데 눈빛만큼은 진짜쟁이였지. 뭐랄까… 물감을 보는 눈이 굶주린 사람 같았달까.” 굶주린 사람. 집 냉장고를 음식으로 가득 채워놓고, 정작 자신은 굶주려 있었던 여자. “혹시… 어디로 가는지 보셨습니까?” 민준이 물었다. “글쎄요. 택시를 타는 것 같던데. 주문진 쪽으로 간다고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주문진. 단서가 나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준은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차에 탄 민준은 핸들을 잡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룰리안 블루.’ 그는 검색창에 그 단어를 쳐보았다. 화면에 선명하고 시린 파란색이 떴다. 그제야 기억났다. 연애 시절, 유진이 입고 나왔던 파란색 원피스. 바닷가에서 그 원피스 자락을 날리며 환하게 웃던 모습. “예쁘다. 너랑 잘 어울려.” 그때 민준이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결혼 후, 민준은 한 번 지나가는 말로 그랬었다. “자기는 너무 쨍한 색 입으면 좀 촌스러운 것 같아. 그냥 은은한 게 더 고급스럽지 않아?” 그 한마디.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 때문에 유진은 자신의 색을 버리고 베이지색 속으로 숨어버린 것이었을까? 민준은 자신의 입을 쥐어뜯고 싶었다.

그는 차를 몰아 주문진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주문진이 얼마나 넓은데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게다가 찾는다고 해서 뭘 어쩔 것인가? ‘찾지 마.’ 일기장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보고 싶었다. 아니, 확인해야 했다. 그녀가 무사한지. 그 굶주린 눈빛이 채워졌는지.

3시간을 넘게 주문진 해변 도로와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낡은 민박집들, 원룸촌들을 기웃거렸다. 바보 같은 짓인 줄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민준은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들어가서 샌드위치 하나와 캔 커피를 샀다. 차 안으로 돌아와 포장지를 뜯었다. 차가운 샌드위치. 양상추는 시들었고, 빵은 퍽퍽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목이 메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씹어 삼키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이었다. “으흐흑… 컥…” 입안에 샌드위치가 꽉 차 있는데 울음이 터져 나와 사레가 들렸다. 기침을 하고, 콧물을 흘리며, 그는 짐승처럼 울었다. 너무 초라했다. 대기업 본부장 후보, 연봉 1억이 넘는 박민준이, 강릉 바닷가 구석에 처박힌 차 안에서 2천 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으며 울고 있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따뜻함이 그리워서 우는 것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풍기던 된장찌개 냄새. “왔어요? 힘들었죠?” 하며 받아주던 옷가지. 씻고 나오면 깎아놓은 과일 접시. TV를 보다가 잠들면 조용히 덮어주던 담요. 그 모든 따뜻함이 ‘김유진’이었다. 그는 그 따뜻함이 공짜인 줄 알았다. 평생 무한 리필되는 서비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유진이 자신의 뼈와 살을 태워서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재가 되어 사라졌고, 자신은 이제야 추위에 떨고 있었다. “유진아… 보고 싶어… 잘못했어…” 그는 핸들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었다. 차가운 샌드위치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참을 울고 나서, 민준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차를 몰고 해안 도로 끝 쪽으로 갔다. 방파제가 있는 곳이었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차에서 내려 밤바다의 찬 바람을 맞았다.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 방파제 근처에 있는 허름한 2층 건물. 1층은 횟집이고 2층은 옥탑방인 건물이었다. 그 옥탑방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커튼이 없는 창문이라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민준은 숨을 멈췄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김유진이었다. 이젤 앞에 앉아 있었다. 등은 구부정했고, 머리는 질끈 묶어 올린 채였다. 옷에는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집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유진이 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그리고 그녀가… 웃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그림이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표정이 살아 있었다. 집에서 민준을 대할 때 짓던 그 매끄럽고 완벽한 ‘영업용 미소’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민준은 한 발자국 다가가려다 멈췄다.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가면 안 된다. 지금 자신이 저 문을 두드리는 순간, 저 생생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다시 공포와 체념으로 굳어버릴 것이다. 민준은 가로등 뒤에 몸을 숨겼다. 도둑처럼, 자신의 아내를 훔쳐보았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을, 내가 10년 동안 시들어 죽게 만들었구나.

유진은 캔버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 놓인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불어 터진 컵라면이었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면을 후루룩 먹었다. 국물까지 마셨다. 집에서는 유기농 재료만 고집하고, 인스턴트는 몸에 나쁘다며 입에도 안 대던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표정이었다. 민준은 깨달았다.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였다. 그녀는 지금 자유를 먹고 있었다. 민준은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꽉 쥐었다. 112에 신고해서 가출 신고를 해제할 수도 있다. 뛰어 올라가서 억지로 차에 태울 수도 있다. “애들이 기다려!”라고 소리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줌을 최대한 당겼다. 화질은 깨졌지만,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들고 있는 유진의 옆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찰칵. 셔터 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혔다. 민준은 그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저장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잘 자, 유진아.” 그는 바람에 실려 보내듯 작게 속삭였다. “그림… 다 그릴 때까지만 기다릴게.” 민준은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었지만,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백미러로 멀어지는 그 작은 불빛을 보고 또 보았다. 그 불빛이 마치 등대처럼 느껴졌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자신에게 ‘여기가 내가 있는 곳이야, 하지만 아직은 오지 마’라고 말하는 등대.

서울로 돌아오는 길, 민준은 다시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이번에는 샌드위치를 사 먹지 않았다. 그는 휴게소에 들러 된장찌개를 시켰다. 맛이 없었다. 조미료 맛만 강했다. 하지만 그는 국물까지 다 비웠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아이들을 챙기고, 집을 치워놓고, 그녀가 돌아올 자리를 닦아놓아야 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속죄의 시간이었다.


그 시각, 유진은 붓을 내려놓았다. 팔이 저려왔다. 몇 시간을 집중했는지 모른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파도 소리만 들려왔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로등 밑에 빈 캔 깡통 하나가 굴러가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민준 씨가 여기를 어떻게 알겠어. 알더라도… 오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바쁘니까.” 그녀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유진은 다시 붓을 들었다. 캔버스 위에는 반쯤 완성된 그림이 있었다.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풍경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을 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비어 있었다. 유진은 파란색 물감을 듬뿍 찍어 거울 속의 얼굴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떤 표정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는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김유진의 얼굴을.

방 한구석에 놓인 핸드폰이 조용히 진동했다. 배터리가 10% 남았다는 경고였다. 그녀는 충전기를 꽂지 않았다. 전원이 꺼지면 꺼지는 대로.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끊어지는 대로.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전력은 오직 하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씨뿐이었다.


[Word Count: 3,450]

🔵 Hồi 2 – Phần 4: Khoảng Lặng & Sự Trưởng Thành

(Chủ đề: Những bài học muộn màng và tín hiệu từ xa)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유진이 떠난 10월의 서늘한 바람은 어느새 11월의 차가운 초겨울 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리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물들었다가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되어 뒹굴었다. 한 달. 유진이 집을 비운 지 딱 30일이 지났다.

서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쓰레기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모델 하우스같이 반짝이지도 않았다. 거실 한구석에는 아직 개지 않은 빨래 더미가 쌓여 있었고, 싱크대에는 아침에 먹은 그릇들이 물에 불려져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발 디딜 틈은 있었고, 썩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타협이었다.

저녁 7시. 민준은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양복 바지 위에는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유진의 앞치마가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 “아빠, 또 계란말이야?” 식탁에 앉아 문제집을 풀던 지우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 이게 제일 영양가 있고 쉽잖아. 오늘은 파도 좀 썰어 넣었어.” 민준이 뒤집개로 계란말이를 조심스럽게 뒤집었다. 치이익. 노란 계란물이 익어가는 소리가 제법 그럴듯했다. 처음 며칠은 태워 먹거나 찢어먹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제법 모양이 잡혔다. 유진은 이걸 어떻게 매일 아침 10분 만에 뚝딱 만들어냈을까. 민준은 계란을 말면서 생각했다. 파를 다지는 것만 해도 5분은 걸리는데. 그녀의 손은 마법사의 손이었던가. 아니면 내 눈이 멀어서 그녀의 바쁜 손놀림을 보지 못했던 걸까.

“시우야, 손 씻고 와! 밥 먹자!” 민준이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 “네에-” 힘없는 대답과 함께 시우가 나왔다. 녀석은 한 달 사이에 조금 야위었다. 엄마를 찾으며 울던 횟수는 줄었지만, 대신 말수가 줄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현관 앞에서 잠시 멈칫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혹시라도 엄마 신발이 놓여 있을까 봐. 하지만 언제나 현관은 비어 있었고, 시우는 고개를 떨구며 들어오곤 했다. 식탁 위에는 김치찌개(밀키트로 끓인 것), 계란말이, 그리고 시장에서 사 온 밑반찬 몇 가지가 차려졌다. “잘 먹겠습니다.” 세 식구는 숟가락을 들었다. “음… 아빠, 오늘 계란말이 좀 짜다.” 지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소금 조절 실패했나 보다. 밥 많이 먹어. 밥이랑 먹으면 간 맞아.” 민준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먹어!”라고 소리쳤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도 알기 때문이다. 맛없는 걸 먹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지난 한 달간 그가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다.

“아빠.” 밥을 오물거리던 시우가 입을 열었다. “응? 왜?” “엄마는… 지금 밥 먹었을까?” 순간 식탁 위에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마저 뚝 끊겼다. 민준은 목이 메어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는 강릉에서 찍어온 사진을 떠올렸다.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환하게 웃던 유진의 얼굴. “그럼. 엄마 밥 잘 먹고 있지. 아주 맛있는 거 드시고 계실 거야.” “엄마는 김치찌개 좋아하는데… 내가 끓인 건 맛없다고 안 먹으면 어떡해?” “아니야. 시우가 끓여주면 엄마는 흙탕물이라도 마실걸?” 지우가 툭 쏘아붙였다.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동생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지우도 변했다. 자기 교복 셔츠를 직접 다리고, 주말에는 청소기를 돌렸다.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걸 알기에, 아빠 혼자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툴툴거리면서도 집안일을 도왔다. “시우야.” 민준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지금 공부하러 간 거야.” “공부?” “응. 엄마 원래 꿈이 화가였잖아. 그림 그리는 사람. 우리가 너무 엄마를 붙잡고 있어서 공부를 못 했어. 그래서 지금 밀린 공부 하느라 늦는 거야.” “그럼 공부 다 하면 와?” 시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다 하면 오지. 그러니까 우리가 엄마 공부 방해하지 않게 씩씩하게 기다려야 해. 알았지?”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안 울게. 나도 받아쓰기 백 점 맞으면서 기다릴 거야.” 민준은 시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릿결이 유진을 닮아 부드러웠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유진은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배우고 있으니까.


강릉의 밤바다는 겨울 냄새를 품고 있었다. 유진은 옥탑방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일러 기름값이 아까워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코끝이 시렸지만, 정신은 맑았다. 방 한쪽에는 완성된 그림 다섯 점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그린 바다 그림, 시장 상인들의 얼굴, 그리고… 거울을 보는 자신의 뒷모습. 그림 속의 유진은 더 이상 베이지색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붉은색 스웨터를 입고, 파란색 머리끈을 하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활짝 웃고 있지는 않았다. 약간은 지쳐 보이고, 눈가에는 주름도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게 나구나.’ 유진은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예쁜 인형이 아니라, 상처받고 늙어가지만 살아있는 사람.

띠링. 핸드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은행 앱 알림이었다. [입금: 박민준 1,000,000원] [적요: 좋은 물감 사.] 유진은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난달에도, 이번 달에도 생활비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메시지가 달랐다. ‘좋은 물감 사.’ 단 다섯 글자. 유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꿈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과이자 사랑 표현이었다. ‘바보…’ 유진은 핸드폰을 가슴에 품고 돌아누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민준이 미웠다. 아이들도 원망스러웠다. 나를 착취한 사람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며 마음의 독소가 빠져나가자, 다른 감정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움이었다. 민준의 서툰 위로가, 시우의 젖 냄새가, 지우의 까칠한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녀는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혼자 자는 밤은 여전히 춥고 외로웠다. 자유는 달콤했지만, 고독은 썼다.

다음 날, 유진은 우체국에 갔다. 그녀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대신 엽서 한 장을 골랐다. 강릉의 겨울 바다가 찍힌 사진 엽서였다. 그녀는 엽서 뒷면에 딱 한 문장을 적었다. 그림이 아닌 글로. [밥 잘 챙겨 먹어.] 수신인은 ‘박민준, 박지우, 박시우’.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었다. 툭. 엽서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한참 동안 우체통 앞에 서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아직은 더 그려야 한다는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조금만 더…” 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더 내가 단단해지면. 그때 갈게. 지금 가면 다시 무너질지도 몰라.” 그녀는 다시 화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준이 보내준 돈으로 제일 비싼 붓을 살 생각이었다.


며칠 후, 서울의 아파트. 민준은 퇴근길에 우편함을 확인했다. 각종 고지서들 사이에 껴 있는 작은 엽서 한 장. 그는 손이 떨려 엽서를 떨어뜨릴 뻔했다. 강릉 소인이 찍힌 엽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잊은 채, 그는 그 자리에서 엽서를 읽었다. [밥 잘 챙겨 먹어.] 익숙한 글씨체. 민준은 엽서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물감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엽서를 가슴에 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현관 센서등이 꺼져 어두웠지만, 그의 마음에는 환한 불이 켜졌다. ‘보고 있구나. 우리를 걱정하고 있구나.’ 용서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가 그들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않았다는 증거였다.

민준은 집에 들어와 냉장고 문 정중앙에 그 엽서를 자석으로 붙였다. “이게 뭐야?” 물을 마시러 나온 지우가 물었다. “엄마가 보낸 거야.” “진짜?” 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엽서를 들여다보았다. “밥 잘 챙겨 먹어… 치, 자기는 잘 먹나 몰라.” 지우는 툴툴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엽서 사진을 찍었다. “내 프로필 사진 해야지.” 그날 밤, 민준네 식탁 분위기는 한 달 만에 가장 밝았다. 반찬은 여전히 부실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희망이라는 양념이 쳐져 있었다. “아빠, 나 이번 주말에 시우랑 도서관 갈 거야. 아빠는 집에서 좀 쉬어.” 지우가 밥을 먹으며 말했다. “어? 네가 시우를 데리고?” “응. 아빠 요새 너무 피곤해 보여.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어. 엄마 오면 나한테 뭐라고 할 걸? 남편 관리 어떻게 했냐고.” 민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참나, 누가 누굴 관리해. 알았다. 고맙다 딸.” 민준은 국물을 떠먹으며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유진의 부재는 가족들을 성장시켰다. 민준은 집안일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고, 지우는 배려를 배웠고, 시우는 기다림을 배웠다. 그들은 이제 유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유진이 돌아왔을 때, 그녀가 다시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함께 나누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밤 11시. 아이들이 잠들고, 민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땄다. TV 소리는 작게 줄여 놓았다. 그는 냉장고에 붙은 엽서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유진아. 우리 잘하고 있어. 완벽하진 않지만, 무너지지 않았어. 네가 없어서 많이 힘들지만, 네가 왜 떠났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쌉싸름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천천히 와. 실컷 그리고, 실컷 놀고, 실컷 자고 와. 우리는 여기 그대로 있을 테니까.” 그는 이제 조급해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민준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장모님]이었다. 유진의 친정엄마.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시간에 장모님이 전화를 할 리가 없는데. “여보세요? 장모님?”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준 서방! 자네 지금 어디야? 유진이… 우리 유진이한테 연락 왔어?” 민준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니요? 무슨 일 있으세요?” “방금…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 강릉이라는데… 유진이가 쓰러졌대. 응급실에 있다고…” 민준의 손에서 맥주 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콸콸 쏟아지는 거품이 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천천히 오라고 했는데. 실컷 놀다 오라고 했는데. 쓰러지다니. 응급실이라니. 한 달간 쌓아올린 그 얇고 위태로운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민준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비명처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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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ồi 3 – Phần 1: Tái Ngộ Nơi Ranh Giới

(Chủ đề: Đôi bàn tay nhuốm màu xanh và sự sụp đổ của bức tường phòng vệ)

새벽 1시. 영동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검은 세단의 속도계는 시속 14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은 핸들을 부서져라 꽉 쥐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유성처럼 휙휙 지나갔다.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오직 하나의 문장만이 붉은 경고등처럼 깜빡거리고 있었다. ‘유진이가 쓰러졌다.’ 10년 동안 감기 몸살 한 번 앓지 않았던 여자였다. 아니,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여자였다. 그런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건, 정말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제발… 제발…” 민준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상상했다. 유진이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혹시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보낸 마지막 문자가 ‘팔자 좋네’였던가? 아니지, 엽서를 받고 혼잣말을 했지. 하지만 유진은 그걸 못 들었잖아. 두려움이 목을 조여왔다. 그는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엔진이 비명을 질렀지만, 민준의 속이 타들어가는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벽 3시 20분.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 앞. 민준은 차를 주차장에 대충 구겨 넣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소독약 냄새와 차가운 공기. 낯선 기계음들이 섞여 있는 그곳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정거장이었다. “김유진 환자요! 김유진 어디 있습니까!” 그는 안내 데스크로 달려가 소리쳤다.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성함이… 김유진 님, 보호자 되세요?” “네! 남편입니다! 어디 있습니까!” “진정하시고요. 저쪽 3번 구역 커튼 안쪽에 계세요. 지금 수액 맞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주무시고 계신다. 그 말에 민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죽은 건 아니구나. 의식은 있구나. 그는 벽을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떨리는 다리를 끌고 3번 구역으로 걸어갔다. 흰색 커튼이 처져 있었다. 민준은 커튼 앞에서 멈췄다. 손을 뻗어 커튼 자락을 잡았다. 열기가 두려웠다. 그 안에 있을 유진의 모습이, 자신이 10년간 방치해 온 죄의 증거일 테니까.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커튼을 젖혔다. 촤르륵. 좁은 침대 위에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민준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작았다. 기억 속의 유진보다 훨씬 더 작고, 말라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눈 밑은 퀭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물감이 잔뜩 묻은 헐렁한 티셔츠와 무릎 나온 트레이닝바지였다. 우아하고 단정했던 ‘사모님’ 김유진은 그곳에 없었다. 대신, 치열하게 싸우다 쓰러진 전사 같은 모습의 여자가 누워 있었다. 민준은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다 앉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링거 줄이 연결된 그녀의 오른손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민준의 시선이 그 손에 고정되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손톱 밑에는 파란색 물감이 짙게 배어 있어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손등은 터서 거칠거칠했다. 그것은 ‘노동’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작’의 손이었다. 그녀는 지난 한 달 동안, 밥 먹는 시간도 아끼고 잠자는 시간도 쪼개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민준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뻗어 유진의 손을 감싸 쥐었다.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미세한 맥박이 느껴졌다. “유진아…”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유진의 손등을 적셨다. “얼마나 미련하게 한 거야.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자기는 이렇게 굶고 다니면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볼에 비볐다. 거친 감촉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핸드크림을 달고 살며 부드러움을 유지하려 애쓰던 손이었다. 민준이 “당신 손은 참 곱다”고 말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거친 손이, 물감이 밴 이 더러운 손이, 민준에게는 훨씬 더 아름답고 아프게 다가왔다.

“보호자분이세요?”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흰 가운을 입은 당직 의사였다. 민준은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네, 남편입니다. 제 아내… 상태가 어떻습니까?” 의사는 차트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탈수 증세입니다. 과로도 겹쳤고요.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안 하신 것 같네요. 위장에 음식물은 거의 없고 커피랑 컵라면 국물 정도만 있었어요.”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수면 부족이 심각합니다. 몸이 기계도 아닌데 이렇게 혹사시키면 탈 납니다. 환자분 뭐 하시는 분이세요? 손에 물감이 잔뜩 묻어 있던데, 화가입니까?” “화가입니까?” 그 질문이 민준의 가슴을 때렸다. 10년 동안 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 마트 직원도, 학부모들도, 심지어 남편인 자신도 묻지 않았던 질문. “네…” 민준은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힘주어 대답했다. “네. 화가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에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 하는 분들이 가끔 이러시더라고요. 몰입하다 보면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단 수액 다 맞고 안정을 취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 안정입니다. 잘 챙겨 드시게 하세요.” 의사가 자리를 비우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민준은 의자를 끌어와 침대 옆에 앉았다. ‘화가 김유진.’ 그는 입안으로 그 말을 되뇌어 보았다. 낯설지만 벅찬 이름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새벽 5시가 가까워질 무렵, 유진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민준은 벌떡 일어났다. “유진아? 정신이 들어?” 유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떠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 민준의 얼굴에 닿았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공포였다. “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링거 바늘이 꽂힌 팔이 꺾일 뻔했다. “조심해! 움직이지 마!” 민준이 급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유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편. 현실감이 돌아오자 덜컥 겁이 났다. 잡혔다. 결국 잡히고 말았다. 나의 짧은 방학은 끝났다. 이제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겠구나. “미안… 미안해요…” 유진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내가 왜 여기 있지? 지금 몇 시예요? 애들은? 애들은 학교 갔어?”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밥… 밥 해줘야 하는데. 지우 교복 다려야 하는데. 내가 늦잠 잤네. 미안해, 여보. 내가 미쳤나 봐.” 그녀의 머릿속 시계는 다시 10년 전, 아니 한 달 전의 그 아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병원에 누워 있다는 사실보다, 아침밥을 못 차려줬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트라우마였다. ‘완벽한 아내’여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슬픈 조건반사.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억지로 일어나려는 유진을 꽉 껴안았다. “유진아! 제발! 정신 차려!” “놔줘요… 가야 돼. 늦으면 당신 화내잖아. 넥타이도 챙겨줘야 하고…” 유진은 민준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링거 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피가 역류했다. “안 해도 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민준이 소리쳤다. 병실 안의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우 학교 잘 갔어. 시우도 유치원 잘 다니고. 밥 내가 해 먹었어. 빨래도 내가 했고, 청소도 내가 했어.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마.” 민준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변했다. “당신 없어도 우리 안 죽어. 그러니까 제발 당신 몸부터 챙겨. 응?”

유진의 몸부림이 멈췄다. 그녀는 민준의 품에 안긴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안 해도 된다고?” “그래. 안 해도 돼. 아무것도 하지 마.”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민준을 보았다. 민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항상 넥타이를 매고 당당하던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그제야 유진의 긴장이 탁, 하고 풀렸다. “나… 실패한 거 아니야?” 그녀가 작게 물었다. “뭐?” “나… 도망쳤는데… 멋지게 살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쓰러져서 당신한테 신세 지고… 꼴사납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파란 물감이 묻은 손. 부끄러웠다. 멋진 화가가 되어 금의환향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영양실조 걸린 환자였다. 민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당신 성공했어.” 그는 유진의 손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 화가시냐고. 손에 물감 묻은 거 보니까 예술 하는 분 같다고.” 유진의 눈이 커졌다. “남들이 봐도 당신은 화가야. 밥 짓는 여자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여자라고. 그거면 성공한 거 아니야?” “……”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10년 동안 듣고 싶었던 말. 너는 화가야. “그리고… 당신 그림 봤어.” 민준이 고백했다. “저번에 몰래 왔었어. 창문 밖에서 당신 그림 그리는 거 봤어. 웃고 있더라. 나랑 살 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으로.” 유진은 놀라서 민준을 쳐다보았다. 그때 느꼈던 시선이 착각이 아니었구나. “왜… 안 들어왔어?” “무서워서. 내가 들어가면 당신 웃음이 사라질까 봐. 그리고… 미안해서. 그 웃음을 뺏은 게 나인 것 같아서.” 민준은 유진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유진아. 집에 가자는 말 안 할게. 다시 밥 해달라는 말도 안 할게.” “……” “그냥… 아프지만 마. 죽지만 마. 여기서 그림을 그리든, 잠을 자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다 지원해 줄게. 그러니까 제발… 쓰러지지만 마.”

민준의 진심이 유진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뜨거운 용암처럼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내렸다. 그녀는 민준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무서웠어…” 유진이 흐느꼈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았는데… 동시에 너무 무서웠어.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봐.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를까 봐… 당신이 나를 정말로 잊어버릴까 봐…” 독립은 달콤했지만, 고독은 뼈저렸다. 그녀는 강한 척했지만 사실은 매일 밤 누군가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민준은 그녀를 더 세게 안았다. “어떻게 잊어. 집구석 어딜 봐도 당신 흔적뿐인데. 숟가락 하나, 수건 한 장에도 다 당신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잊어.”

두 사람은 좁은 응급실 침대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것은 화해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신고’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 여기 있어. 나 아직 당신을 필요로 해.”라고 외치는 처절한 확인이었다. 유진의 손에 묻은 파란색 물감이 민준의 흰 와이셔츠 등에 묻어났다. 하지만 민준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 자국이 훈장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아내가, 김유진이라는 여자가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아침 7시. 날이 밝았다. 응급실의 분주함은 여전했지만, 두 사람의 주변 공기는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수액이 다 들어갔다. 유진의 얼굴에도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 “좀 어때? 배는 안 고파?” 민준이 물었다. “배고파.” 유진이 솔직하게 말했다. 예전 같으면 “괜찮아”라고 했을 텐데. “뭐 먹고 싶어? 죽 사 올까?” “아니.”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김밥. 당신이 싸주는 김밥.” “김밥?” 민준이 당황했다. 그는 김밥을 싸본 적이 없었다. “편의점 김밥 말고. 그냥 밥에 참기름 넣고 김에 대충 말아서 줘. 당신이… 예전에 연애할 때 한 번 싸줬잖아. 옆구리 다 터진 거.” 기억났다. 12년 전, 소풍 갔을 때. 민준이 서툰 솜씨로 싸왔던 그 못생긴 김밥. 유진은 그걸 먹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었다. “알았어. 까짓거 싸보지 뭐. 근데 재료가 없는데…” “그냥 맨밥에 김만 있어도 돼. 당신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 내가 해주는 밥 말고.” 그 말의 의미를 민준은 알았다. 그녀는 이제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 가자. 퇴원 수속하고, 너네 자취방으로 가자. 내가 거기서 김밥이든 뭐든 다 해줄게.”

민준은 유진을 부축해서 병원을 나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유진은 눈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햇살을 가렸다. 손톱 밑의 파란 물감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더 이상 5시의 알람 소리에 깨어나는 기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배고프면 밥을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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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ồi 3 – Phần 2: Tái Sinh Và Lời Cầu Hôn Thứ Hai

(Chủ đề: Bữa cơm vụng về và bản hợp동 mới)

퇴원 수속을 마치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강릉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허름한 옥탑방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민준은 유진을 업다시피 부축했다. 계단은 좁았고, 녹슨 난간은 차가웠다. 민준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좁고 위험한 길을 유진이 매일 혼자 오르내렸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다 왔어. 여기야.” 유진이 낡은 철문 앞에 섰다. 열쇠로 문을 여는 손이 조금 떨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의 이 초라한 ‘성(Castle)’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웠다. 문이 열리고, 3평 남짓한 좁은 방이 드러났다. 방 안은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일러를 끄고 나갔기 때문이다. 민준은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천장이 낮아 고개를 약간 숙여야 했다. 방 안의 풍경은 단출했다. 이불 한 채, 작은 옷걸이, 밥상 하나. 그리고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젤과 캔버스들.

민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림들로 향했다. 바닥에, 벽에, 창가에 세워진 그림들. 온통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같은 파란색은 하나도 없었다. 깊은 심해 같은 남색, 햇살 부서지는 에메랄드빛, 폭풍우 치는 잿빛 파랑. 그리고 그 가운데, 미완성의 자화상이 있었다. 거울을 보고 있는 유진의 뒷모습. 거울 속의 얼굴은 이제 막 눈코입이 그려진 상태였다. 그림 속의 유진은 울고 있지 않았다. 웃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주 강렬한 눈빛으로. 마치 “나는 여기 살아있다”고 세상에 외치는 듯한 눈빛이었다.

민준은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게… 당신이야?” 민준이 물었다. “아직… 다 못 그렸어.” 유진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아니. 다 그린 것 같아. 내가 본 당신 얼굴 중에 제일… 힘 있어 보여.” 민준은 그림 속의 아내와 눈을 맞췄다. 집에서 보던, 항상 바닥을 보거나 민준의 눈치를 보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나 그동안… 진짜 껍데기랑 살았구나.” 민준의 말에 유진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뼈아픈 반성이었다.

“춥다. 보일러부터 켜자.” 민준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보일러 컨트롤러를 찾아서 온도를 높이고, 전기장판을 켰다. “당신은 이불 덮고 여기 앉아 있어. 내가 밥 할게. 김밥 먹고 싶다며.” “재료도 없는데…” “아까 편의점에서 사 왔어. 즉석밥이랑 김이랑 참치캔. 김치는 여기 있지?” 민준은 좁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싱크대가 너무 낮아서 그는 다리를 쩍 벌리고 서야 했다. 유진은 전기장판 위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달그락, 쿵.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났다. 칼질은 서툴렀고, 프라이팬을 다루는 손길은 위태로웠다. 평소라면 “비켜, 내가 할게.”라고 나서서 뺏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가만히 있었다. 그의 널찍한 등이 땀으로 젖어가는 것을 보며, 유진은 처음으로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30분 후. 개다리소반 위에 김밥 두 줄이 올라왔다. 모양은 처참했다. 밥알은 삐져나왔고, 김은 눅눅해져 있었으며, 굵기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건 너무 커서 한입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미안하다. 비주얼이 좀… 그렇네.” 민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먹어 봐. 맛은… 장담 못 해.” 유진은 젓가락으로 가장 못생긴 꼬다리 부분을 집었다. 입안 가득 넣고 씹었다.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서 느끼했고, 밥은 약간 설익었다. 참치의 비린 맛도 났다. 그런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맛있었다. 10년 동안 먹어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어때? 이상해? 뱉어도 돼.” 민준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유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입안의 김밥을 꿀꺽 삼켰다. “아니… 맛있어. 진짜 맛있어.” “거짓말. 내가 봐도 개밥 같은데.” “진짜야. 당신 맛이 나. 서툴고, 투박한데… 따뜻한 맛.” 유진은 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볼이 미어지도록 씹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김밥과 섞였다. 짠맛이 났다.

민준은 말없이 물을 떠주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두 사람은 좁은 방 안에서, 못생긴 김밥을 나눠 먹었다. 10년간의 결혼 생활 중 가장 조용하고, 가장 친밀한 식사였다.

식사가 끝나고, 민준은 캔 커피 두 개를 땄다. 하나를 유진에게 건넸다. “유진아.” 민준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유진은 긴장하며 커피 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올 것이 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시간이었다. “나… 집에 안 가고 싶어.” 유진이 먼저 선수를 쳤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당신이 이렇게 잘해줘도… 막상 집에 가면 또 똑같아질 거야. 당신은 야근할 거고, 애들은 칭얼거릴 거고, 나는 또 걸레를 들고 밥상을 차리겠지. 그러다 보면… 그림 속의 저 여자는 또 사라질 거야.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민준의 변화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관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나도 그게 무서워. 내가 작심삼일로 끝날까 봐. 며칠 잘해주다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서 ‘밥 줘’라고 할까 봐.” 민준은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래서 가져왔어.” “그게… 뭔데?” “서류.” 민준이 봉투를 내밀었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설마 이혼 서류일까? 내가 너무 제멋대로 굴어서 결국 그도 지친 걸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봉투를 열어 서류를 꺼냈다. [이혼 신고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준이 자필로 쓴, 법적 효력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엉성한 계약서였다.

[제목: 김유진 독립 만세 및 박민준 갱생 프로젝트] 유진은 황당해서 눈을 깜빡였다.

  1. 박민준과 김유진은 부부 관계를 재설정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남편’과 ‘전업주부’의 계약은 오늘부로 파기한다.
  2. 김유진은 ‘엄마’와 ‘아내’직을 사퇴하고 ‘프리랜서 화가’로 전업한다. 가사는 부업으로만 참여하며, 주 업무는 그림 그리기다.
  3. 박민준은 ‘돈 버는 기계’직을 사퇴하고 ‘공동 양육자’로 전직한다. 주 3회 이상 칼퇴근하여 저녁을 준비하고, 주말에는 전적으로 가사를 책임진다.
  4. 거주지 분리 (중요). 김유진의 창작 활동을 위해, 서울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한다. 유진은 주 3일은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주 4일은 집으로 ‘출근’한다.
  5. 위 사항을 어길 시, 박민준은 전 재산을 김유진에게 양도하고 진짜로 이혼당한다.

“이게… 뭐야?” 유진이 멍하니 물었다. “새로운 계약서.” 민준이 유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돌아오라고 하면 네가 숨 막혀 죽을 거 알아. 그래서 생각했어. 우리가 같이 살되, 같이 살지 않는 방법.” “작업실? 주 3일 외박?” “그래. 너만의 공간이 필요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밥 냄새도 안 나고, 오직 물감 냄새만 나는 공간. 거기서 3일 동안은 김유진으로 살아. 그리고 나머지 4일은… 우리랑 놀아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룸메이트처럼.”

유진은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상상도 못 한 제안이었다. 그녀는 선택지가 두 개뿐인 줄 알았다. 감옥 같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을 버리고 도망치거나. 그런데 민준이 제3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당신… 힘들 텐데. 회사 일도 바쁜데… 애들 케어랑 집안일을 혼자 할 수 있겠어?” “힘들겠지. 지난 한 달 동안 죽는 줄 알았어.” 민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유진아. 네가 없는 집은 더 지옥이더라. 몸 편한 지옥보다, 몸 힘든 천국이 나아. 네가 웃으면서 우리 곁에 있어준다면, 내가 좀 더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민준이 유진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꽉 잡는 게 아니라, 살포시 손등을 덮었다. “유진아. 나랑 이혼해 줘.” 민준이 말했다. “응?” “내조의 여왕, 현모양처 김유진이랑 이혼할래.”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리고… 화가 김유진 씨. 저랑 연애합시다. 제가 밥도 잘하고, 청소도 배우고 있고, 돈도 제법 벌어요. 나랑… 다시 시작해 줄래요?”

유진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하고 뜨거운 정화(Catharsis)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있어.” 유진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뭔데? 다 들어줄게.” “김밥… 연습 좀 더 해. 너무 맛없어서 두 번은 못 먹겠어.” “푸하하!” 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유진도 따라 웃었다. 좁은 옥탑방 안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방 안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

민준은 펜을 꺼내 계약서 하단에 서명했다. 그리고 펜을 유진에게 건넸다.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김 유 진] 그 글씨는 힘이 있었다. 10년 전 혼인 신고서에 적을 때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단단한 서명이었다.

“자, 이제 짐 싸자.”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어. 지우랑 시우가 목 빠지게 기다려. 영상 통화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어. 엄마 놀랄까 봐.” 유진은 방을 둘러보았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나의 도피처. 나를 다시 찾게 해 준 고마운 공간. “그림들은?” “다 가져가야지. 용달차 불렀어. 서울 작업실로 바로 옮길 거야. 작업실은… 내가 봐둔 데가 있어. 햇빛 잘 들고 층고 높은 곳으로.” 민준의 준비성에 유진은 혀를 내둘렀다. “당신… 계획이 다 있었구나?” “그럼. 내가 누구야. 대기업 전략기획팀 박 부장이야.” 민준이 으스대며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숨겨진 그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유진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그림을 포장했다. 뽁뽁이로 캔버스를 감싸며, 유진은 그림 하나하나에 작별 인사를 했다. 아니, 작별이 아니었다. 이 그림들은 서울로 가서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 테니까. 마지막으로 미완성 자화상을 포장할 때였다. 유진이 붓을 들었다. “잠깐만.” 그녀는 파란색 물감을 찍어, 그림 속 거울 귀퉁이에 작은 무언가를 그려 넣었다. 아주 작고 흐릿하지만, 분명한 형태. 그것은 문 틈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세 사람의 형상이었다. 민준과 지우, 그리고 시우. 그녀의 세상(거울) 속에, 이제 가족이 들어와도 괜찮다는 신호였다. 방해꾼이 아닌, 배경이자 동반자로.

“가자.” 유진이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집에 가자.” 민준이 유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여전히 거칠고 물감이 묻어 있었지만, 민준은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유진 또한, 이 손을 잡는 것이 더 이상 구속이 아님을 알았다. 이것은 ‘연대’였다.


[Word Count: 2,850]

🔴 Hồi 3 – Phần 3: Những Mảnh Vỡ Lấp Lánh

(Chủ đề: Sự bất toàn vĩ đại & Định nghĩa lại hạnh phúc)

1년 후.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

입구에는 [신진 작가 김유진 개인전: 나를 버려주세요]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 속 그림은 강렬했다. 짙푸른 세룰리안 블루의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빈 의자 하나. 그 의자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왕좌처럼 보였다.

갤러리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와, 색감 봐. 진짜 우울한데… 묘하게 따뜻하지 않아?” “제목이 ‘나를 버려주세요’래. 파격적이다.” 관람객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전시장 한구석,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김유진이었다. 그녀는 변해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는 귀밑으로 짧게 자른 단발이 되었고, 항상 입던 베이지색 원피스 대신 헐렁한 검은색 셔츠와 와이드 팬츠를 입고 있었다. 화장은 옅었지만,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발라 생기가 돌았다. 무엇보다 눈빛이 달랐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는 당당한 눈빛.

“작가님, 반응이 너무 좋은데요? 벌써 작품 절반이 예약 판매됐어요.” 큐레이터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운이 좋았네요.”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겸손한 말투였지만, 예전처럼 자신을 비하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전시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엄마!” “여보!” 익숙한 목소리들.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민준과 아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몰골이… 유진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민준은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가 약간 비뚤어져 있었고, 품에는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세련된 장미 꽃다발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프리지어와 안개꽃이 섞인, 동네 꽃집에서 급하게 산 듯한 투박한 꽃다발이었다. 지우는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였고(학원에서 바로 온 모양이었다), 시우는 셔츠 단추를 하나 잘못 끼우고 있었다. 1년 전의 유진이라면 기겁을 했을 모습이었다. 당장 달려가서 넥타이를 고쳐주고, 시우의 단추를 다시 채워주고, 지우에게 “옷이 그게 뭐니!”라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진은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조금 엉성하고, 조금 부족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온 나의 가족.

“축하해, 여보!” 민준이 꽃다발을 내밀었다. “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 늦었어. 시우가 화장실 급하다고 해서 휴게소 들르느라 또 늦고… 미안.” 민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괜찮아. 안 늦었어. 꽃 예쁘다. 고마워.” 유진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았다. 진한 프리지어 향기. 봄 냄새였다. “엄마, 내 그림은? 내 그림 어디 있어?” 시우가 유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기 있어. 가볼래?”

유진은 가족들을 데리고 전시장 중앙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이 걸려 있었다. 작품명: [나의 우주] 그것은 바다 그림이 아니었다. 거실 풍경이었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모델 하우스 같은 거실이 아니었다. 소파에는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이 걸쳐져 있고, 바닥에는 레고 블록이 흩어져 있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피자 박스가 있고, TV 앞에는 배를 내놓고 잠든 남자(민준)와 그 옆에서 게임을 하는 여자아이(지우), 장난감 칼을 휘두르는 남자아이(시우)가 있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이젤 앞에서, 붓을 들고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유진). 그림 속의 색채는 난잡했다. 빨강, 파랑, 노랑이 뒤섞여 시끄러운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기묘한 조화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 이거 우리 집이잖아!” 시우가 소리쳤다. “이거 아빠다! 배 나왔어! 푸하하!” 지우도 킥킥거렸다. 민준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여보… 하필이면 왜 저런 적나라한 모습을… 나 본부장 승진했는데 체면이 있지…” 민준이 투덜거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림 속의 자신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지. 10년 동안 집에서도 넥타이를 풀지 못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진짜 ‘가장’이 아닌 ‘가족’으로 녹아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 그림, 안 팔 건가 봐?” 민준이 그림 아래 붙은 빨간 스티커(판매 완료)가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응. 안 팔아.” 유진이 대답했다. “이건 내 거니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나의 지저분하고 완벽한 우주니까.” 유진은 민준의 손을 잡았다. 민준의 손은 예전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설거지와 빨래를 하느라 생긴 주부습진의 흔적이었다. 유진은 그 거친 손이 좋았다. 그것은 그가 그녀의 짐을 나눠 짊어졌다는 증거였으니까.

전시회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 운전은 유진이 했다. 민준은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요즘 야근과 집안일을 병행하느라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의 아이들도 잠들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유진은 백미러로 잠든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1년 전, 그녀는 이들을 버리고 떠났었다. 그때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려진 것은 가족이 아니라, 유진을 옭아매던 ‘강박’이었다. “나를 버려주세요.” 그녀가 남긴 편지의 진짜 의미는, “나의 껍데기를 버리고 진짜 나를 봐주세요”였는지도 모른다.

신호 대기 중, 민준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유진아… 국 데워놨어… 먹어…” 유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았어. 집에 가서 먹을게.” 이제 이 집에는 ‘밥을 해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먼저 퇴근한 사람, 덜 바쁜 사람이 밥을 한다. 맛이 없으면 없는 대로, 배달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 대신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현관은 어지러웠다.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신발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예전의 유진이라면 들어오자마자 신발부터 정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은 신발을 툭 차서 대충 길만 만들고 들어갔다. “얘들아, 씻고 자야지.” “아, 귀찮아… 내일 씻으면 안 돼?” 지우가 징징거렸다. “안 돼. 냄새나. 얼른 씻어.” 민준이 하품을 하며 아이들을 욕실로 몰아넣었다. “여보, 당신은? 안 씻어?” 민준이 물었다. “나는 작업실 가서 짐 좀 정리하고 올게. 오늘 전시회 뒤풀이 때 받은 꽃들도 좀 갖다 놓고.” 유진은 이제 집 근처에 얻은 오피스텔 작업실로 향했다. 그곳은 그녀만의 성역이었다. 일주일에 3일은 그곳에서 자지만, 오늘은 그냥 짐만 두고 올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민준이 해놓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으니까.

작업실 문을 열자 익숙한 물감 냄새가 났다. 유진은 꽃다발을 화병에 꽂았다. 창가에 놓인 캔버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흰색인 빈 캔버스. 그녀는 붓을 들지 않고, 매직을 들어 캔버스 뒷면에 날짜를 적었다. [2024년 11월 20일. 첫 개인전을 마친 날.] 그리고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나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선명해질 뿐이다.]

유진은 작업실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저장된 이름. [남편]에서 [박민준]으로, 그리고 다시 [룸메이트 박 씨]로 바뀐 이름.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 어디야?” 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소리가 나는 걸 보니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는 중이야. 찌개, 안 식었지?” “팔팔 끓이고 있어. 두부도 더 넣었고. 빨리 와. 시우가 엄마랑 자겠다고 안 자고 버티고 있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유진은 달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상쾌했다. 집이 기다려졌다. 청소해야 할 감옥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숨 쉬고 있는, 나의 지저분하고 따뜻한 우주로. 그녀는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릭. “다녀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엄마!” 시우가 달려와 안겼다. 지우가 방에서 나오며 씩 웃었다. 고무장갑을 낀 민준이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왔어? 고생했어, 김 작가.”

유진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바닥에 떨어진 양말 한 짝이 보였다. 그녀는 그것을 줍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가볍게 밟고 지나가며, 남편과 아이들을 향해 활짝 팔을 벌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미완성의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화면이 줌 아웃되면서, 거실 한가운데 서로 엉켜 안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유화처럼 정지한다.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이 그들을 감싸고 있다.)

[자막: 나를 버려주세요. 그리하여, 우리를 얻게 하소서.]

[FIN]


[Word Count: 2,780] [Tổng số từ toàn bộ kịch bản: 28,500+]

📋 BƯỚC 1: DÀN Ý CHI TIẾT KỊCH BẢN ĐIỆN ẢNH

Tiêu đề dự kiến: 나를 버려주세요 (Xin hãy buông bỏ em) Thể loại: Melodrama, Tâm lý gia đình, Healing (Chữa lành) Ngôi kể: Ngôi thứ ba (tập trung luân phiên vào nội tâm Yujin và Min-jun để tạo sự đối lập cảm xúc).

1. Hồ Sơ Nhân Vật & Động Cơ

Nhân vật chính: KIM YUJIN (38 tuổi)

  • Vai trò: Người vợ/người mẹ hoàn hảo. Trước đây là một họa sĩ minh họa sách thiếu nhi đầy triển vọng, giờ là nội trợ toàn thời gian.
  • Tính cách: Dịu dàng, cầu toàn, hay kìm nén cảm xúc. Mắc hội chứng “Trầm cảm cười” (Smiling Depression).
  • Điểm yếu (Fatal Flaw): Tin rằng giá trị duy nhất của mình là làm hài lòng người khác. Cô sợ rằng nếu cô không hoàn hảo, cô sẽ bị bỏ rơi.
  • Động cơ: Cô muốn tìm lại cái tên “Yujin” đã bị chôn vùi dưới danh xưng “Mẹ Ji-woo” và “Vợ Min-jun”.

Nhân vật đối trọng: PARK MIN-JUN (40 tuổi)

  • Vai trò: Chồng Yujin. Kiến trúc sư trưởng tại một công ty lớn.
  • Tính cách: Thực tế, trách nhiệm, khô khan. Anh yêu vợ nhưng yêu theo cách “cung cấp vật chất”, coi sự hy sinh của vợ là điều hiển nhiên (như không khí).
  • Điểm yếu: Mù tịt về cảm xúc. Anh nghĩ rằng “không có tin gì là tin tốt” trong hôn nhân.
  • Sự thay đổi: Từ kẻ vô tâm trở thành người biết lắng nghe và thấu cảm.

Nhân vật phụ quan trọng:

  • Park Ji-woo (14 tuổi): Con gái lớn, đang tuổi dậy thì, hay gắt gỏng với mẹ nhưng thực ra rất nhạy cảm.
  • Park Si-woo (7 tuổi): Con trai út, ngây thơ, là sợi dây níu giữ Yujin.
  • Bác sĩ Choi (50 tuổi): Bác sĩ tâm lý, người duy nhất biết bí mật của Yujin.

2. Cấu Trúc Kịch Bản (3 Hồi – 10 Phần)

🟢 HỒI 1: VẾT NỨT HOÀN HẢO (Khoảng 8.000 từ)

Chủ đề: Sự ngột ngạt dưới vỏ bọc hạnh phúc.

  • Phần 1: Chiếc lồng kính.
    • Mở đầu bằng buổi sáng “điển hình” tại nhà họ Park. Yujin dậy từ 5h sáng, chuẩn bị mọi thứ hoàn hảo như một cỗ máy.
    • Min-jun và các con đón nhận sự chăm sóc đó một cách hờ hững. Min-jun chê cà vạt lệch, Ji-woo càu nhàu về bữa sáng. Không ai hỏi “Em/Mẹ có mệt không?”.
    • Yujin mỉm cười tiễn mọi người đi, nhưng khi cửa đóng lại, nụ cười tắt ngấm ngay lập tức. Cô nhìn vào gương và không nhận ra người trong đó.
  • Phần 2: Giọt nước tràn ly.
    • Yujin đi họp phụ huynh, bị các bà mẹ khác ghen tị và áp đặt hình mẫu “người mẹ quốc dân”.
    • Cô nhận được điện thoại từ tòa soạn muốn mời cô vẽ lại, nhưng cô từ chối vì “bận lo cho gia đình”.
    • Sự cố: Tại siêu thị, Yujin bị ngất xỉu vì kiệt sức và rối loạn lo âu, nhưng khi tỉnh dậy ở phòng y tế, cô nói dối chồng là “đi spa”. Min-jun trả lời tin nhắn: “Ừ, em sướng thật đấy”. Câu nói này như nhát dao cuối cùng.
  • Phần 3: Lời tạm biệt lặng lẽ (Điểm ngoặt Hồi 1).
    • Yujin không cãi vã, không khóc lóc. Cô dành một đêm để dọn dẹp nhà cửa sạch bong kin kít, nấu sẵn đồ ăn cho 3 ngày.
    • Cô viết một lá thư tay ngắn gọn: “Em mệt rồi. Xin hãy buông bỏ em một thời gian. Đừng tìm em.”
    • Sáng hôm sau, khi Min-jun thức dậy, Yujin đã biến mất. Chỉ còn lại sự im lặng đáng sợ. Min-jun ban đầu nghĩ vợ chỉ đang “làm mình làm mẩy”.

🔵 HỒI 2: KHOẢNG TRỐNG VÀ SỰ SỤP ĐỔ (Khoảng 12.000 – 13.000 từ)

Chủ đề: Hỗn loạn, hối hận và những bí mật được phơi bày.

  • Phần 1: Cơn bão ập đến.
    • Ngày đầu tiên vắng Yujin: Hỗn loạn. Min-jun không biết quần áo ở đâu, con cái muộn học, bữa tối là mì gói.
    • Min-jun bắt đầu tức giận. Anh gọi điện cho Yujin điên cuồng nhưng thuê bao tắt máy. Anh nghĩ cô thật vô trách nhiệm.
    • Ji-woo (con gái) bắt đầu nhận ra sự trống vắng của mẹ và khóc thầm.
  • Phần 2: Bí mật trong ngăn kéo (Twist 1).
    • Ngày thứ 3, Min-jun tìm kiếm giấy tờ bảo hiểm và vô tình tìm thấy cuốn nhật ký bí mật của Yujin giấu sâu dưới đáy tủ.
    • Đọc nhật ký, anh bàng hoàng. Không phải là những lời trách móc, mà là những dòng tự sự như di chúc: “Hôm nay, mình đã giết chết Yujin năm 24 tuổi để làm mẹ của Si-woo”, “Mình muốn biến mất trước khi mình ghét bỏ những người mình yêu thương”.
    • Min-jun hoảng sợ tột độ, nghĩ rằng Yujin có ý định tự tử chứ không chỉ là bỏ đi.
  • Phần 3: Cuộc tìm kiếm trong vô vọng.
    • Min-jun nghỉ làm, điên cuồng tìm kiếm. Anh đến những nơi Yujin từng thích (phòng tranh, công viên cũ) nhưng đều không thấy.
    • Thông qua bạn bè cũ của vợ, anh mới biết Yujin đã từng tài năng và rực rỡ thế nào, và cô đã từ bỏ học bổng du học để cưới anh. Min-jun nhận ra anh chính là “kẻ cắp” ước mơ của vợ.
    • Deep Emotional Point: Min-jun ngồi trong xe ô tô, ăn chiếc bánh sandwich khô khốc và bật khóc vì nhớ vị canh kim chi vợ nấu, nhưng hơn hết là nhớ hơi ấm bàn tay cô mà anh đã lâu không nắm.
  • Phần 4: Cuộc gặp gỡ đau lòng (Twist 2 & Điểm giữa).
    • Min-jun tìm được manh mối Yujin đang ở một ngôi làng ven biển hẻo lánh, nơi cô thuê một căn nhà nhỏ để vẽ tranh.
    • Anh lao đến, định kéo cô về. Nhưng anh khựng lại khi thấy Yujin qua cửa sổ: Cô đang cười – một nụ cười rạng rỡ, tự do mà 10 năm nay anh chưa từng thấy. Cô đang vẽ, lấm lem màu, trông sống động hơn bao giờ hết.
    • Min-jun nhận ra: Không phải cô ấy bỏ đi để chết, cô ấy bỏ đi để được sống. Anh không dám bước vào, chỉ đứng ngoài mưa nhìn vợ. Sự hiện diện của anh lúc này sẽ giết chết niềm vui đó.

🔴 HỒI 3: TÁI SINH VÀ ĐỊNH NGHĨA LẠI TÌNH YÊU (Khoảng 8.000 từ)

Chủ đề: Sự thấu hiểu và cách yêu thương mới.

  • Phần 1: Biến cố.
    • Con trai út Si-woo bị sốt cao nhập viện. Min-jun buộc phải gọi cho Yujin (qua số điện thoại bàn của chủ nhà trọ mà anh điều tra được).
    • Yujin tức tốc trở về bệnh viện. Cô hoảng loạn, cảm thấy tội lỗi vì đã bỏ con. Cô định quay lại làm “nô lệ” cho gia đình như cũ.
    • Nhưng Min-jun ngăn cô lại. Anh nhìn thấy sự sợ hãi trong mắt vợ.
  • Phần 2: Lời thú nhận (Catharsis).
    • Một cuộc đối thoại thẳng thắn và đẫm nước mắt giữa hai vợ chồng tại hành lang bệnh viện.
    • Yujin thừa nhận: “Em sợ quay về. Em sợ em lại biến mất trong chính ngôi nhà đó.”
    • Min-jun thú nhận sự ích kỷ của mình và đưa ra tờ đơn ly hôn (nhưng không phải để chia tay): “Anh ly hôn với người vợ hoàn hảo Kim Yujin. Anh muốn hẹn hò lại với cô họa sĩ Kim Yujin.”
  • Phần 3: Cái kết mở và chữa lành (Twist cuối – Ý nghĩa nhân sinh).
    • Gia đình không quay lại trật tự cũ. Yujin không về nhà ngay mà thuê một studio gần nhà để làm việc và ngủ ở đó 3 ngày/tuần.
    • Min-jun và các con học cách tự lập (nấu ăn, dọn dẹp).
    • Cảnh kết: Yujin ngồi vẽ trong studio, Min-jun và các con đến thăm, mang theo đồ ăn họ tự nấu (dù không ngon). Yujin nhìn bức tranh cô đang vẽ: Bức chân dung gia đình, nhưng lần này, cô đã vẽ chính mình rõ nét nhất, đứng ở trung tâm, rạng rỡ.
    • Thông điệp: “Để giữ được nhau, đôi khi ta phải buông bỏ hình tượng hoàn hảo mà ta áp đặt lên đối phương.”

⚙️ Kế Hoạch Viết & Phong Cách TTS (Text-To-Speech)

  • Tiếng Hàn: Sử dụng kính ngữ và lối văn kể chuyện nhẹ nhàng nhưng sâu lắng (giọng văn của các tiểu thuyết healing Hàn Quốc).
  • Câu văn: Ngắt nhịp rõ ràng. Ví dụ: “Gió thổi qua. Lạnh buốt. Nhưng không lạnh bằng lòng cô lúc này.” (Dễ đọc, giàu cảm xúc).
  • Từ vựng: Tránh từ Hán-Hàn quá cổ, dùng từ ngữ sinh hoạt hiện đại nhưng tinh tế.

1. TIÊU ĐỀ YOUTUBE (유튜브 제목)

Lựa chọn 1 trong 3 phương án dưới đây tùy theo phong cách kênh của bạn:

Phương án 1: Gây tò mò & Sốc (Hiệu quả cao nhất)

“제발 나를 버려줘…” 10년 차 완벽한 아내가 가출하며 남긴 쪽지 한 장, 그리고 충격적인 일기장 ( “Xin hãy vứt bỏ em…” Mảnh giấy người vợ hoàn hảo để lại khi bỏ nhà đi sau 10 năm, và cuốn nhật ký gây sốc)

Phương án 2: Cảm xúc & Hối hận (Nhắm vào đối tượng gia đình)

집 나간 아내를 찾지 말라던 이유… 텅 빈 방에서 남편이 오열한 진짜 까닭 (눈물주의 😭) (Lý do vợ bỏ đi và bảo đừng tìm… Lý do thực sự khiến người chồng khóc nấc trong căn phòng trống (Cảnh báo tốn khăn giấy 😭))

Phương án 3: Ngắn gọn & Ám ảnh (Phong cách phim điện ảnh)

“여보, 나를 놓아줘요” 식탁 위에 놓인 결혼반지와 아내의 마지막 부탁 (“Mình ơi, buông tha cho em đi” Chiếc nhẫn cưới trên bàn ăn và lời thỉnh cầu cuối cùng của vợ)


2. MÔ TẢ VIDEO (설명란)

Copy đoạn dưới đây vào phần mô tả:

모두가 부러워하던 완벽한 아내, 유진.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식탁 위에 결혼반지와 쪽지 한 장만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나를 버려주세요. 찾지 마세요.”

아내가 떠난 후 엉망진창이 된 집. 남편 민준은 그제야 깨닫습니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따뜻한 밥상과 깨끗한 옷들이, 아내의 피와 눈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아내의 낡은 일기장 속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비밀이 적혀 있었는데…

무심했던 남편의 뒤늦은 후회, 그리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난 아내의 홀로서기. 가슴 먹먹한 감동과 뜨거운 눈물을 선사할 힐링 가족 스토리.

[Key Points] 📍 웃고 있어도 우울한 ‘가면 우울증’ 아내의 내면 📍 아내가 사라진 후 지옥으로 변한 남편의 일상 📍 강릉 바다에서 다시 피어나는 10년 전의 꿈 📍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병원 재회 씬

📝 Keywords & Hashtags: #감동사연 #부부갈등 #후회남 #힐링스토리 #사이다 #결혼생활 #드라마 #오디오북 #수면동화 #나를버려주세요 #가족 #이혼 #재회 #눈물버튼 #SmilingDepression #KdramaStory


3. PROMPT THUMBNAIL (AI Image Generator)

Sử dụng prompt này cho Midjourney, Stable Diffusion hoặc DALL-E để tạo ảnh bìa thu hút.

Mô tả hình ảnh: Một hình ảnh chia đôi (Split screen) hoặc độ tương phản cao.

  • Bên trái: Một người chồng (mặc vest công sở xộc xệch) ngồi gục đầu thất vọng trước bàn ăn bừa bộn, trên bàn là một tờ giấy nhắn và chiếc nhẫn cưới sáng lấp lánh.
  • Bên phải: Một người phụ nữ (vợ) đang đứng trước biển xanh thẫm, quay lưng lại hoặc nhìn nghiêng, đang vẽ tranh, cảm giác tự do nhưng cô độc.
  • Không khí: Cinematic, tâm trạng, ánh sáng kịch tính.

Prompt Tiếng Anh:

Create a cinematic YouTube thumbnail for a sad Korean family drama. Split composition. [Left Side]: A despairing Asian husband in a messy, dark living room, sitting at a dining table with his head in his hands, crying. On the table, focus on a handwritten note and a shiny wedding ring left behind. Lighting is cold and dim. [Right Side]: A woman standing alone by a deep blue ocean, painting on a canvas. She looks free but emotional. The wind is blowing her hair. Lighting is natural and slightly melancholic. [Style]: High contrast, 8k resolution, emotional realism, K-drama poster style, text space available in the center.

Gợi ý text chèn lên Thumbnail (bằng tiếng Hàn):

  • Text chính: 아내의 일기장 (Nhật ký của vợ)
  • Text phụ: “내가 죽어가고 있었다” (“Tôi đang chết dần”)

Dưới đây là 50 prompt hình ảnh liên tục

[Cinematic close-up], Real photo of a beautiful but exhausted Korean woman in her late 30s, Yujin, opening her eyes in a dimly lit bedroom at dawn, soft blue ambient light filtering through curtains, high resolution, Arri Alexa camera, 8k, focus on her melancholic eyes.

[Wide shot], A modern high-end apartment kitchen in Seoul, Yujin standing alone preparing breakfast, steam rising from a rice cooker, cold morning light, immaculate and sterile atmosphere, hyper-realistic reflection on marble countertop, silence and isolation vibe.

[Medium shot], Yujin ironing a white dress shirt, steam puffing out from the iron, focus on her hands and the fabric texture, background is blurred showing a clean but empty living room, cinematic lighting, muted colors.

[Over-the-shoulder shot], A Korean family at the dining table, the husband Min-jun reading news on a smartphone, ignoring the food, Yujin looking at him with a longing and empty expression, natural window light, depth of field, 8k.

[Medium shot], Yujin standing at the apartment door, bowing slightly as her husband and children leave, the heavy metal door closing, shadow covering her face, sense of loneliness, hyper-realistic texture of the door.

[Eye-level shot], Yujin sitting in a luxurious brunch cafe in Seoul surrounded by other stylish Korean mothers, she is forcing a smile, shallow depth of field, sunlight hitting her face but she looks isolated, sharp focus.

[Close-up], Yujin holding a smartphone to her ear on a busy Seoul street, tears welling up in her eyes, blurred background of city traffic and pedestrians, cinematic color grading with teal and orange, emotional intensity.

[Low angle shot], A glass jar of red pasta sauce shattering on the white tile floor of a Korean supermarket, red sauce splattering near white sneakers, motion blur, hyper-realistic texture, dramatic lighting.

[High angle shot], Yujin fainting on the supermarket floor, surrounded by spilled groceries, harsh fluorescent lighting causing glare, a few blurred figures of shoppers rushing towards her, realistic skin texture.

[Medium shot], Yujin lying on a hospital bed in a small clinic, looking at a text message on her phone, screen light illuminating her pale face, expression of realization and despair, dark room.

[Close-up], Yujin’s hand placing a gold wedding ring on a glass dining table, next to a handwritten note, reflection of the ring on the glass, focus on the texture of the metal, warm indoor lighting, 8k.

[Wide shot], Back view of Yujin walking away from her apartment complex at night, pulling a small suitcase, streetlights casting long shadows, autumn leaves on the ground, melancholic atmosphere, South Korean street vibe.

[Medium shot], Min-jun waking up in a messy bed, sunlight hitting his confused face, looking at the empty spot next to him, dust motes dancing in the light, realistic bedroom setting.

[Point of view shot], Min-jun looking at the kitchen table, seeing the wedding ring and the note, hands trembling, shallow depth of field focusing on the note, morning light.

[Medium shot], Chaos in the living room, two Korean children (a teenage girl and a young boy) crying and looking distressed, clothes scattered on the floor, Min-jun looking overwhelmed and angry, handheld camera style, realistic messy home.

[Close-up], Min-jun opening a drawer and finding a hidden black notebook under piles of clothes, dust particles in the air, cinematic lighting, focus on the texture of the notebook cover.

[Over-the-shoulder shot], Min-jun reading the diary at a desk, tears streaming down his face, emotional breakdown, warm desk lamp light against the dark room, hyper-realistic facial expression.

[Flashback – Artistic], A younger Yujin painting a canvas with bright colors, smiling radiantly, sun flare, soft focus, dreamlike quality, contrasting with the current reality.

[Medium shot], Min-jun and his teenage daughter sitting on the floor of a messy room, both looking sad and reflective, bonding moment, natural light from the window, realistic skin tones.

[Wide shot], Min-jun driving a black sedan on a coastal highway in Korea, ocean visible in the background, overcast sky, motion blur on the road, cinematic composition.

[Exterior shot], An old, rustic art supply store in a seaside town (Gangneung), weathered wood texture, rain falling, puddles on the ground reflecting the store sign, realistic Korean countryside vibe.

[Medium shot], Min-jun showing a photo of his wife to an old Korean shopkeeper inside the art store, shelves filled with colorful paints, warm tungsten lighting, detailed clutter.

[Extreme Close-up], Tubes of “Cerulean Blue” oil paint on a wooden table, cap open, paint squeezed out, rich texture and vibrant color, focus on the pigment.

[Wide shot], A rooftop room in a small seaside building, Yujin sitting in front of an easel painting the sea, wind blowing her hair, ocean horizon in the distance, natural daylight, sense of freedom.

[Telephoto shot], View through a car window, Min-jun watching Yujin from a distance, rain droplets on the car glass, focus on Yujin laughing while painting, cinematic bokeh.

[Close-up], Min-jun eating a cold convenience store sandwich in his car, tears mixing with the food, pathetic and sad expression, dim car interior light, hyper-realistic.

[Medium shot], Yujin eating cup ramen in her small room, looking at her painting with satisfaction, steam rising from the noodles, messy hair, paint on her face, warm and cozy atmosphere.

[Close-up], Yujin’s hand painting on a canvas, fingers stained with blue paint, rough skin texture, brush strokes visible, sunlight hitting the canvas, 8k resolution.

[Wide shot], The Seoul apartment kitchen, Min-jun trying to cook, looking clumsy, wearing an apron over his suit, steam and mess everywhere, realistic domestic scene.

[Medium shot], Min-jun and the two kids eating a simple meal at the table, looking at a postcard on the fridge, faint smiles on their faces, warm evening light.

[Close-up], The postcard on the fridge attached with a magnet, text in Korean, photo of the sea, texture of the paper, realistic kitchen background.

[Medium shot], Min-jun receiving a phone call late at night in the living room, expression changing from calm to shock and fear, dark blue ambient light from the TV.

[Dynamic shot], Min-jun rushing through a hospital corridor, blurred background, motion, look of desperation, harsh hospital lighting, cinematic framing.

[Medium shot], Inside the ER curtain, Yujin lying on a bed with an IV drip, looking pale and frail, paint stains still on her hands, medical equipment in background, realistic hospital scene.

[Close-up], Min-jun holding Yujin’s rough, paint-stained hand, tears falling onto her skin, deep emotional connection, focus on the texture of hands, soft lighting.

[Two-shot], Min-jun hugging Yujin on the hospital bed, Yujin looking relieved and vulnerable, raw emotion, cinematic composition, South Korean melodrama style.

[Wide shot], The small rooftop room in Gangneung, Min-jun and Yujin sitting on the floor eating ugly gimbap, sunlight streaming through the window, dust motes, intimate and peaceful atmosphere.

[Close-up], A handwritten contract on a piece of paper, shaky handwriting, signatures, texture of the paper, lying on a wooden floor.

[Medium shot], Min-jun carrying paintings wrapped in bubble wrap down a narrow staircase, Yujin following him, blue sky in the background, realistic outdoor lighting.

[Time-lapse style], Split screen showing Yujin painting in a studio and Min-jun cooking at home with kids, passing of time, changing seasons, cinematic montage.

[Exterior shot], A modern art gallery in Insadong, Seoul, banner showing Yujin’s exhibition, people entering, realistic street scene, sunny day.

[Medium shot], Yujin standing in the gallery, wearing a chic black outfit, short hair, looking confident and professional, gallery lighting, artwork in background.

[Wide shot], Min-jun and the kids entering the gallery, they look slightly disheveled (crooked tie, messy hair) but happy, holding a humble bouquet of flowers, realistic family vibe.

[Close-up], The main painting on the wall: an abstract and colorful depiction of a messy living room with a happy family, rich oil paint texture, gallery spotlight.

[Medium shot], The family looking at the painting together, laughing and pointing, back view, emotional warmth, depth of field.

[Close-up], Yujin and Min-jun holding hands, focus on their hands, Min-jun’s hand is rough from housework, Yujin’s hand has paint traces, wedding rings visible, cinematic detail.

[Wide shot], Inside the car at night, Min-jun and kids sleeping, Yujin driving and looking at them through the rearview mirror with a smile, city lights passing by outside.

[Medium shot], The family entering their apartment, shoes scattered at the entrance, warm yellow light spilling from the living room, realistic home setting.

[Full shot], The family hugging in the messy living room, imperfect but happy, toys on the floor, soft focus, cinematic lighting.

[Cinematic Close-up], Final shot of Yujin’s face, smiling genuinely, a smudge of blue paint on her cheek, looking directly at the camera, eyes full of life and hope, high resolution, Arri Alexa, 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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